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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의사권선생 Jan 10. 2017

E05. 반려견의 급성 췌장염과 신전성 급성 신부전

숨결이 엷어지고 있는 호준이의 입원 일기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키우시는 단골 보호자 분이 계신다. 그 요크셔는 `수호`라고 하는데 모히칸 컷을 하고 연두색으로 염색한 상태로 내원했었기에 잊을 수가 없는 강아지이다. 때마침 모 음악프로그램에서 "이 구역의 OO 개는 나야!~" 이런 가사가 유행이었는데, 요크셔와 정말 잘 어울렸던 모히칸 컷이라 내가 키우는 요크셔도 그렇게 미용시켜줄까 고민까지 했었다. 아무튼 그런 패셔니스타 수호가 외로울까 봐 보호자님께선 재작년쯤 `호준`이라는 미니어처 슈나우져를 한 마리 더 키우시게 되었고 우리 병원에 두 마리가 종종 오고 있었다.

급성 췌장염과 신전성 신부전을 앓고 있는 호준이..워낙 건강했던 아이라 처음 병원왔을 때는 단순한 식이성 구토인 줄 알았다.

호준이는 무척이나 건강한 아이였다.  한 살 반밖에 안된 나이에 특별히 병원 진료를 받지 않고 미용만 하러 오는 편이었는데, 어찌나 힘이 좋고 방방 뛰는지 한번 병원 왔다 가면 미용 실장님이 진이 빠질 정도라 하셨다. 그런데 그랬던 호준이가 어쩐 일로 전혀 기력도 없는 상태로 며칠 전 내원했다.


보호자 분께서는 잠깐 이 아이와 수호를 지방에 있는 집에 두었다고 하셨는데, 호준이만 유독 3일 전부터 부쩍 토하며 먹지도 않고 기력이 없어 급히 서울 집으로 데려오셨다고 했다. 아주 어린 개체는 아니지만, 이 나이에서도 소화가 안 되는 물건을 삼키는 증상인 '이물 섭취' 등의 가능성이 있어 방사선을 먼저 찍어보았더니 이물 섭취 소견은 없고, 대신 복부 전반의 이상소견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보호자 분께 관련 사진을 보며 추가 검사의 필요성을 말씀드리고, 혈액화학검사와 혈구검사를 진행하였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그 잠깐 사이에도 호준이는 구토를 하고 구역질을 심하게 했다. 그때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일부 사람에게서 유전자 이상으로 췌장염이 빈발하듯 미니어처 슈나우져는 SPINK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잦다. 그래서 다른 품종보다 췌장염이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가 급성 췌장염으로 인한 다량의 구토 후 전해질 불균형에 따른 급성 신부전(신장 기능부전)이 오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라면 생존율이 훨씬 낮아지게 된다.


항구토제를 피하주사 놔주면서 '지이지 익' 하며 인쇄되는 검사 결과 소리를 들었을 때 '제발 동반질환만은 아니길..' 하고 빌었으나 결과는 심각했다. BUN(요독)>200, CRE=7.3, P>20 이 확인되는 심각한 요독증이었다. 백혈구 수치도 2만 이상으로 증가되어 있었으며, 췌장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인 AMY도 800이 넘어갔다. 또한 우측 전방 복부의 통증이 호소되는 것이 촉진됐다. 방사선 소견으로 다른 질병을 감별진단 내리고, 급성 췌장염과 함께 유발된 신전성(PRE-RENAL) 신부전으로 진단했다. 채혈할 때부터 황달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실제적으로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심각한 이상수치가 확인되어 맘이 아팠다.


아마 대부분의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들께 "치료 중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질병이 무엇이냐?"라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세 분 중 한 분은 '신부전`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내 경우는 보통 이런 환자들이 오면 그 날 당일은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잔다.

신부전은 치료가 만만치 않다. 이유는 신장은 30% 정도만 남아있어도 그 기능이 정상으로 운영되어 혈액검사에서는 종종 100점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여하튼 자기의 역할을 쥐어짜듯 하면서 기능을 하는 장기기관인 신장은 한번 손상되면 잘 회복되지 않는다.


췌장염 치료는 기본 치료 공식처럼 금식과 수액요법, 기타 약물 등으로 간단히 계획하고 신부전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보통 신부전 치료는 우선적으로 체내 BUN을 배출시켜 혈중 농도를 감소시키는 것을 계획한다. 체내 BUN을 가장 많이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은 대변을 통한 배출이다. 그런데 아픈 반려동물들은 BUN이 내려가기 전에는 절대 식욕이 돌아오지 않는다. 때문에 소화기관에 음식물 자체가 채워지질 않으니 변 배출도 용이치 않게 된다. 그래서 일단 수액 처치를 통해서 소변량을 늘리거나, 대변으로 BUN 배출을 용이케 하기 위해 유산균 제제나 숯(활성탄소) 성분의 내복약을 먹인다. 그렇게 하여 일말의 실가닥 같은 기적이 일어나서 혈 중 BUN 농도가 낮아지면, 신장 질환 환자 동물들을 위한 처방식과 ACEi 같은 약물을 추가 처치한다. 물론 회복 가능성은 있지만, 임상 경험상 50% 정도이고 이 질환은 재발률이 높다. 한 번 손상된 신장은 절대로 완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입원 3일날 부터는 자율음수 중이다. 개선 여지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답보상태이다.

입원 4일 째이나, 아직 자율적으로 처방식을 먹는 단계는 아니다. 다행히 어리고 수액 치료도 잘 견디고 있어서 회복될 가능성은 높다. 늘 겪는 일이지만 일상의 삶과 저너머의 삶의 경계에 있는 동물들을 진료할 때면 한없이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호준이가 꼭 건강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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