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 적응기
내 첫 자취생활은 새로 생긴 신도시였다. 마냥 어리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했던 23살의 나.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나의 자유가 시작되었다. 낯선 건물들과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 아직은 어디가 맛있는 집이고, 어디로 가야 책 읽기 좋은 카페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기다리던 휴무날. 오늘의 하루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평소와 같이 출근 시간. 집 앞엔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있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긴 했었지' 오랜만에 보는 초등학생의 등굣길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 반대로 걸어갔다. 엄마와 함께 오는 저학년, 혼자 걸어가던 고학년. 가만 보니 애들 옷이 예사롭지가 않다. 곁눈질로 아이들의 옷을 훑어봤다. '오 마이 갓. 여기 부자동네인가?' 하나같이 죄다 값비싼 옷들을 걸치고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들은 또 어떻고. 코 앞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는 복장인데도 은근히 부티가 난다.
'짜식들, 너희가 걸치고 있는 옷들이 얼만지나 알고 있냐~'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상권들을 지나 그나마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애견용품점, 브런치카페, 중식당, 옷가게, 레스토랑..' 살짝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널린 게 순댓국 집이었고, 애견용품점은 큰 대형마트에나 있는 것이었다. 중식당은 내가 알던 자장면 집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고, 레스토랑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불편하다. 이 동네는 소박한 정서가 없는 듯 보였다. 적어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곳에는. 한 참을 또 걸었다. 걷다 보니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나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택들 1층마다 상점들이 입점해있었다. 그 흔한 김밥천국이 하나 없다.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끼니를 어떻게 때우는 거야?' 앞으로 1년은 살아야 하는데 덜컥 겁이 났다.
그나마 만만한 수제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먹었고, 북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집에 들어왔다. 신도시라 좋긴 좋은 거 같은데 왠지 모를 쓸쓸함이 나를 훑고 넘어갔다.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작은 원룸이 너무도 넓게 다가왔다. 내가 생각했던 자취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직장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결국은 다시 돌아왔다. 사람이 익숙함을 왜 놓지 못하는지 조금을 알았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 했지만, 익숙함이 주는 포근함은 꽤 욕심이 났었으니까. 그렇게 3년이 또 흘렀고, 얼마 전에 들은 얘기인데 그 지역 상권이 다 죽었다고 한다. 이사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