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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Mar 11. 2024

(1) 그때의 아버지를 찾아서

  


  



  나는 부산 남자가 좋았다. 특히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더 좋았다. 대학교 때는 과대표로 나서서 온갖 '오야붕' 하고, 대성리 가는 기차 바닥에서 앉아 통기타를 치던 목소리 큰 부산 친구들이 좋았다. 영화 <친구>도 좋았다.


  주위에서 나에게 주입시킨 부산은 그런 곳이었다. 아주 큰 대처 도시, 깡소주 세병쯤은 가볍게 비우는 상남자들의 부두  도시, 쪽 팔리는 것을 죽기보다 더 쪽팔려하는 남자들이 쫙 깔린 비현실적인 도시...   


  내가 부산에 대해 가진 판타지의 기원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거나하게 술 한잔 한 날에는 으레 하동 촌놈이 대처인 부산으로 소위 '유학'을 떠나 겪은  실감 나는 이야기로 자고 있던 우리를 다 깨우던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같은 이야기인데 나름 살짝 서로 버전이 달라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었다. 대사 액션이 가미된 날은 영화보다 무협지보다 더 재미있었다.


  아버지 서사의 포인트명했다.  부산에서 당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짱', 소위  '핵인싸'였는지.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한껏 머리와 교복 카라에 힘을 준 촌내 가득한 아버지의 청춘이 담겨있었다. 아버지의 부산은 군인인 형을 따라 낯선 도시로 나온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의 힘찬 청춘의 서사였으리라.


  우리 가족은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이별했다. 충격과 두려움 때문에 슬픔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가끔 아버지의 낡은 상자에 담긴 사진이나 기록들을 열어보곤 했다. 내가 제일 자주 열었다.  아버지의 군대 시절 사진이나 수첩 같은 것을 열어 보며 어머니에게 질문을 하곤 했는데,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의 아버지 이야기는 의외로 어머니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강박적으로 많은 사진, 메모를 남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먼지 덮인 채 남겨진 유물은 마치 풀어야 하는 암호의 아카이브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기록에 대한 강박을 그대로 물려받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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