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과 확실을 넘나드는 우리 안의 그곳
어딘가에 푹 빠져 본 적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글쓰기와 사랑, 여행을 말하겠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러운 감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The Mars Generation(마스 제너레이션)>(2017)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모두 '우주'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마스 제너레이션은 '화성에 첫 발걸음을 디딜 세대'라는 뜻으로, 다큐가 첫 공개될 2017년 당시의 10대 친구들을 가리킨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마스 제너레이션에 속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때 특정 결과를 바라고 시작하는 일들이 잦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이, 이 일이, 이 공부가 나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 것인지 끊임없이 검열과 수정을 반복한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 증세일까? 심리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지점이다.) 물리적인 시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니 나의 개인적인 시간, 경제 자원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 변명해오는 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핑계만 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지금까지 귀를 틀어막고 있었지만, 이제는 들어야 할 때다.
<마스 제너레이션> 속 '화성으로 가고 싶다'는 학생들에게선 그 어떤 치밀한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화성이 궁금하고, 가고 싶을 뿐이다. 우주가 좋다. 그들은 화성이라는 그 눈에 보이지 않던 꿈을 우주에 대한 공부와 실험을 통해 얻은 '확실함'이라는 색으로 알록달록 칠해 나간다. 인간이 화성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망망한 우주에 자신을 던지는 멋진 사람들이다.
식이장애를 겪은 후 호주로 떠난 것, 그곳에서 지은 수많은 결정, 행위들은 마치 <마스 제너레이션>의 학생들처럼 내가 나를 불확실 속에 던져봤기에 가능했다. 안정적인 착지를 하든, 공중에서 모질게 얻어맞아 피와 상처를 내든, 일단 스스로를 그 불확실 속에 던져놓고 보자는 패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새 나는 겁이 많아 정체되었다. 지난 몇 달간 숨 가쁘게 달려오더니, 요즘은 불안함에 벌벌 떨다 하루를 날려버리기 일쑤다. 미래의 불확실함이 두려워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눈 앞에 펼쳐질 일들이 내 손안에 잡히면 좋겠고, 모두 계획되었으면 좋겠다. 6개월, 1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고 괜히 겁까지 먹어 숨이 막혀온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나는 확실함을 좇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가끔은 이전까지 아름답다 여기던 소소한 일상의 것들의 '의미'와 동경하던 자연, 인간, 사랑의 '쓸모'를 계산하기도 한다. 이러니 스스로가 징그러울 때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라는 인간은 순수함을 기름 삼아 활활 불타오르곤 했는데, 요즘의 나는 타오를 것 같이 애만 태우다 팍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잿더미 속 작은 불씨와 같다. 결국 그 어느 것에도 큰 그을림 자국 하나 남기지 못할 게 뻔한 의미 없는 불씨들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이제 나도 화성으로 가야 한다.
화성에 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소변을 걸러 식수로 만드는 것도 배워야 하고, 달걀을 태운 미니 낙하산을 만들어 안전하게 착지시켜보는 실험도 해봐야 한다. 우리가 탄 로켓이 불에 타지 않기 위한 마감 소재도 연구해야 하고, 화성에서 입을 우주복의 원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 각자의 화성은 모두 그 색과 냄새와 공기와 중력이 다를 테다. 그러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로켓을 준비하는지는 각자의 몫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일단 '화성에 간다'는 그 가슴 뛰는 불확실함에 나를 던져 놓고 볼 일이다. 다시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꿈을 꿔야 할 때가 왔다.
나는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무엇이 나를 이리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는가? 나를 공중에 던져버리던 그 객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마치 일 년에 두 번씩 달의 뒷면으로 숨어드는 화성처럼 나의 그 불확실한 꿈도 잠시 사라진 듯한데, 어느 순간이면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내 눈 앞에 나타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는 고민 없이 달려가겠다. 캄캄한 우주 속에 다시 온몸을 던져보겠다.
나의 화성에 내딜 첫발을 위해.
마치며,
지난 1월 30일, 24살이 되었다. 2년 휴학을 했기에, 다가오는 3월에 드디어 4학년이 된다. 졸업을 위해서는 아직 들을 수업도 많고, 동시에 인턴 일도 하고 있어 마음도 머릿속도 마구 엉켜 있고 복잡하다. 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보니, 이번 넷플릭스 리뷰를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종의 해방감과 생기를 안겨줬다.
커버 이미지 출처: NASA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