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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Feb 28. 2021

어두운 바다의 처방

끈적끈적한 연결을 찾아서



잘 될 거라 희망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소속감을 누리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멀어진다. 거기에 여태 버텨주던 몸과 마음까지 이제는 지쳐버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 가슴에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차올라 지금 당장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 분

- 이따금씩 알 수 없는 공허감과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

- 번아웃이 오기 직전이라 잠시 동안의 '물멍'이 필요하신 분

- 청록색 바다 물결과 그것 따라 흘러가는 문어의 일생이 궁금하신 분





Craig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결국 그의 몸과 마음이 잊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갔다. 그곳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우는 죽을 때 고향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눕는다고 전해진다. Craig에게는 어두운 바다가 그가 돌아가야 할, 그리던 곳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남단의 해안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도 높이가 높아지면 집 아래까지 물이 가득 차는 벙갈로에 살았던 그. 자라며 바다와 멀어졌지만 그의 몸과 마음에는 바다의 감촉과 소리, 향이 늘 배어 있었다.





18년 전, <Great Danc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그는 남동생과 Kalahari(칼라하리) 사막으로 떠났다. 다큐를 찍던 그는 '카메라 속 그들의 세상에 소속되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하지만 힘들게 일을 한 나머지 결국 번아웃이 왔고, 주위 가족들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바라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집 안에 있던 그가 당시 느꼈을 압박감. 잠시 가늠만 해봐도 그 짓누름이 느껴진다.



모든 고뇌를 벗어던지고, 청록빛 거센 물살에 뛰어든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답답하고 꽉 막혀있던 곳에 있다가 아무도 없는 너른 수영장 물속으로 깊숙이 다이빙하는 장면이 겹치며,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바다라는 익숙하지만 날이 선 공간에 들어선 Craig. 잠수복은 뭍에 고이 벗어두었다. 바닷속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몇 날 며칠 바닷속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주친 건, 수십 개의 조개와 돌로 자기 몸을 감싼 채 가만히 바위 위에 붙어있던 어느 문어. 강렬했던 Craig와 문어의 첫 만남이었다. (그 문어가 당시 돌과 조개들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다큐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이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Craig를 경계하던 문어는 날이 가면 갈수록 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문어 빨판에 시원히 가슴 짝을 내어준 남자. 생전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일 테다.


 



문어는 Craig의 몸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 그를 불러 어딘가로 부드러이 헤엄쳐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문어와 어울려 다니며 지난 상처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어느 새로운 낯선 존재와의 접촉, 서로를 알게 되기까지의 노력과 관심, 그리고 각자의 한 발 물러섬이 그 둘을 끈끈히 연결 짓고 있었다. Craig는 오랜 시간 간절히 바래왔던, 다큐를 찍으며 채 이루지 못했던 '어느 무엇으로의 소속감'을 몸이 지릿하도록 느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네 인생에서 '연결감'을 느끼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무엇보다 '누구와, 혹은 무엇과' 무슨 연결을 시도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으니 말이다. 쓰다듬어주는 아무나의 손길에 시원하게 배를 드러내 놓는 순진한 강아지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내면의 약한 모습과 슬픔, 아픔을 누구에게 드러낼 수 있을까? 이리저리 현실에 치이다 보면 도통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그래서 Craig는 익숙한 물속으로 들어갔다. 왠지 그곳에 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잘 아는 줄 알았던 바다도 사실은 헤아릴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낯선 문어와의 새로운 연결을 찾아낸다. 이는 문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 포식자 상어들에게 쫓기며 1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목숨을 지키는데 열중하다 보면, 믿고 기댈 만한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Craig와 문어는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해왔다. 서로에게 등산로 약수터 같은 존재였을 테다. 머무르는 것이 아닌, 목을 축이고, 위로를 받고, 다시 어딘가로 힘을 내 떠나야 하니 말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어울려 다니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 속에 당신의 치유를 위한 진정한 연결감이 존재하는가? Craig가 미지의 바다에서 낯선 문어의 존재를 발견한 것처럼, 혹은 그 문어가 낯선 인간 Craig를 만난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이런 끈적끈적한 연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사진 출처: 넷플릭스(Netflix)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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