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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pr 05. 2024

수공예품 러버입니다

하노이로 돌아가기 전, 쇼핑을 하려고 작정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쇼핑엔 무관심한 사람이다. 공항의 면세점도 걷기용으로 돌아다닌다. 그러나 사파에선 반드시 사야 할 게 있었다. 바로 수공예품. 소수민족 여성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수놓아 만든 가방, 지갑, 파우치 같은 것들 말이다.


여전히 가랑비와 안개가 가득한 하늘. 패딩 위에 우비를 걸치는 건 나에게 사파용 교복이 되었다. 그냥 지나칠 땐 기념품점이 많은 것 같았는데 작정하고 찾으니 몇 개 없었다. 수공예품을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 매의 눈으로 훑었다. 사파에선 거의 모든 가게에서 수공예품을 팔았으니까.


가게마다 물건은 비슷했다. 인테리어가 멋진 곳은 비쌌고 작은 가게일수록 저렴했다. '인디고 깟'이라는 가게에서 파우치를 골랐다. 진하게 염색한 청색 천에 자수를 놓았다. 다른 가게보다 두 배로 비쌌지만 디자인이 독특하고 지퍼가 튼튼했다. 선물용이니까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어른은 어디 가고 아이들이 가게를 지켰다. 사파에선 아이들은 일을 돕는 걸 넘어 거의 어른 역할을 해내는 것 같았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 거니?  


사파 교회 앞이 원래 좌판을 펼치고 장사하는 소수민족 아줌마들이 모이는 곳이라 들었다. 날씨가 좋을 얘기겠지. 지금은 좌판손님도 하나도 없다. 하긴 오고 앞도 안 보이는데 누가 오겠나. 같은 사람 빼고 말이다.     


호수 근처 슈퍼마켓에서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를 샀다. 정사각형의 도톰한 체크무늬 천이다. 빨강, 파랑, 연두, 분홍, 노랑 같은 원색이 섞여 화려했다. 길에서 몽족 아줌마들이 쓰고 다니는 걸 자주 보았다. 산뜻한 스카프가 예뻐서 볼 때마다 눈길이 갔다. 어쩐지 따라 하고 싶달까?



호숫가에 온 김에 콩 카페에 들렀다. 코코넛 커피가 맛있다고 하여 먹어볼 참이었다. 따뜻한 코코넛 커피를 주문하자 직원은 퉁명스럽게 코코넛 커피는 아이스만 있다고 말했다. 여름에도 찬 음료를 싫어하는 내가 추운 사파에서 아이스커피는 못 먹지. 그 코코넛 커피는 아니지만 코코넛이 들어간 뜨거운 커피가 있단다. 내가 주문한 거랑 뭐가 다른겨? 그게 따뜻한 코코넛 커피 아닌가벼? 커피는 적당히 달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커피를 마시고 나가다 수공예품을 파는 아줌마와 마주쳤다. 추운 날씨에 장사를 나오셨네요. 나는 언니에게 선물할 작은 가방을 골랐다. 그녀가 이십 만동을 부르길래 십오만 동을 제안했다. 그녀는 흔쾌하게 웃었다. 가격이 맘에 들었나 보다. 더 깎아도 되었을 뻔했다만. 당신도 나도 추우니 대충 합시다.


근처에서 낯선 골목을 발견했다. 코딱지만 한 사파 타운에서 내가 가보지 않은 거리가 있었던가. 무작정 걸었다. 저쪽 번화가에 온통 대형 식당만 가득한 데 비해 여기는 작은 식당들이 모여있었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지도를 확인했다. 10분만 가면 사파 시장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까. 쇼핑하기엔 시장만 한 곳이 없으니까요.



사파 시장은 여느 베트남의 시장과 구조가 비슷했다. 가운데 통로는 넓고 양쪽 구석으로 점포가 둘러싸인 형태였다. 나는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만 돌아다녔다. 드디어 사파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부르는 값의 50~60퍼센트가 적정한 가격인 것 같았다. 슈퍼마켓에서 육만 동(삼천 원)을 주고 산 스카프가 시장에선 십만 동(오천 원)이었다. 먼저 산 스카프의 가격표를 보여주자 얼른 육만 동만 받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알록달록한 수가 잔뜩 놓인 가방 두 개를 샀다.


사파의 수공예품은 자수가 섬세하고 예쁜 대신 내부 마감이 엉터리였다. 뒤집어보면 실오라기가 튀어나오고 시접이 너덜너덜했다. 이걸 어떻게 선물로 주나. 우리 동네 수선집에다 지저분한 부분을 오버록 쳐달라고 해야겠다. 좀 귀찮지만.



하노이로 돌아온 날도 쇼핑하느라 바빴다.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니까 시간이 없었다. 품목은 물어보나나마나 수공예품이겠죠? 올드쿼터의 핸드메이드 샵에선 자수가 적은 대신 안쪽 마감이 깨끗한 물건을 팔았다. 나는 여행용 노트북 가방, 파우치와 가방, 동전 지갑 등등. 진짜 많이도 샀다.      


왜 그렇게 수공예품에 열중하냐고 물으신다면.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물건이 귀하고 어여쁘다. 베트남 물가로는 비싼 편이지만 한국 물가로 치면 매우 저렴하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갖고 싶다.


나의 수공예품 사랑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하노이 공항 면세점에서도 계속되었다. 면세점 물건이 무조건 비싼 줄 알지만 노노. 베트남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잘 찾아보면 가성비 끝내주는 물건을 겟(!) 할 수 있다오. 그날도 핸드폰만 들어가는 미니 손가방을 한국돈 팔천 원에 샀다. 몇 년 전 호찌민 공항에서 산 스웨이드 조각보 가방은 이만 오천 원이었다. 들고나가면 이쁘다고 다들 탐을 낸다.


나는 정성껏 공수해 온 물건을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누구는 자수 솜씨에 놀라고 누구는 이국적인 디자인에 감탄했다. 사온 보람이 있다! 여행을 두 번 하는 기쁨이로세.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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