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 살면서 가장 신기한 사실
방글라데시에 살면서 가장 신기한 것은, 내가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이다.
정말 별 일 없이 산다. 딱히 기록할 만한 사건이 없을 만큼.
릭샤 타고 출퇴근하기도 적응 잘 했고, 사무실 출근과 벵갈어 학원을 병행 중인데 초기에 몸이 힘들었는지 좀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 괜찮고. 시골도 다녀오고, 가까운 곳도 여기저기 몇 번 다녀왔다.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서 새로운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게 좋은 면일 때도 있고 나쁜 면일 때도 있다.
한국은 폭염이라는데, 방글라데시는 우기라 심지어 아침 출근길이 선선할 때도 있다. 4, 5월 바짝 덥다가 6-9월은 우기로 비가 많이 와서 그리 덥지 않다. 이후엔 가을과 겨울이 오는데 겨울도 정말 추우면 (체감) 10도 정도이니, 의외로 참 살기 좋은 날씨다. 더우면 비교적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 틀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더위에 강해서, 어쩌면 현지인보다 더 더위를 안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면, 세상 문화에 노출이 안 된다는 것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다.
나는 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즐기지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기에. 일부 나쁜 것들을 안 보고 사는 게 좋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들어와서 옳지 않은 걸 옳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진심인 듯 교만하고- 성(性) 앞에 열린 마음인 척 값 싼 태도가 보이는 그런 '일부' 방송물들. 여기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카 거리의 쓰레기에 노출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국의 문화는 한국 아니니까 멀리하고, 방글라에서는 방글라 사람 아니니까 이곳의 안 좋은 문화도 부정하는, 어쩌면 회색분자 같기도 하지만 혼자선 매우 만족스러운, 그런 상태랄까.
믿음이 부족하여, 혹은 때로 나를 좌지우지하는 호르몬 때문에,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개업 가게 앞 풍선 인형처럼 마구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온 김영만 아저씨의 "젊음은 도전"이란 말에 힘을 얻고 그래, 젊음은 도전이다, 하고 용감해지기도 하고.
여하튼, 신기하게도 전반적으로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나도 내가 신기하다. 방글라에서 별 일 없이 잘 산다는 사실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 일 없이 산다>를 이곳에서의 내 생활을 생각하며 들으면 참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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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달
쭉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좋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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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발장처럼 살아 보겠다는 지난 글에서의 결심은 (가장 쉬운 실천으로 거리의 걸인들에게 적은 돈이나마 쥐어 줘 보겠다는) 100% 무조건 성과 달성은 아니지만 조금씩, 기회 닿을 때마다 실천해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 더욱 분발하며 살아 보겠다는 제 2의 다짐을 기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