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아리 근력 강화에 좋다고 해서 시작한 줌바댄스는 나를 다시 20대 날라리(?)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 그 시절 나는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무조건 학교앞 디스코텍으로 달려갔었다. 술 한모금 입에 안대고도 세시간을 미친듯 흔들어 댔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 시절 그 곳에서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나도몰래어깨가 들썩거린다.
매주 화/목 7~9는 일주일중 도파민분비가 가장 왕성한 시간이다. 아침에 눈뜨며 '오예~오늘은 줌바댄스하는 날!'하며 기분좋게 시작한다. 식사시간도, 식사양도, 식단도 줌바댄스에 맞추어 조절한다.두시간동안8000보를 뛰기때문에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골고루 섭취해야하고 운동직전 과식은 금물이다. 땀도 비오듯 흐르기때문에 운동후 이온음료로 전해질 균형까지 신경써야한다. 줌바하는 날은 24시간 전부 줌바중심으로 돌아간다. 기꺼이 그렇게 나를 내어주고싶을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줌바에는 정답이 있다? 없다? 내가 추면 그게 줌바다! 자~한번 시작해볼까요?" 강사님의 우렁찬 외침과함께 댄스실에 불이 꺼진다. 한시간동안 조명받으며 신나게 몸을 푼다. 그 시간동안은 20대, 그시절로 돌아간다. 물론 마음만...
어두워서 동작이 틀리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방향이 틀려 부딪힐땐 민망하다. 더 민망한 시간은 한시간 몸풀기이후 불이켜지고 새로운 동작을 배우는 시간이다. 몸따로 마음따로다. 머리로는 이미 웨이브가 만들어졌는데, 몸은 고장난 로보트다.
40년전에는 배우지않고도 음악에 몸이 따라갔었는데...이제는 강사가 한동작 한동작 자상하게 가르쳐주는데도 이렇게 로보트같을까...'왕년의 나와 너무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 나이에 너무 무리한 도전을 했나...?'하며 여러가지 그만둘 이유들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몰라...'라는 또다른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내가 추면 그게 줌바다!'라는 강사의 외침에 용기를 내본다.
흥겨운 라틴음악에 내 몸을 맡기고(?) 그냥 틀리면 웃어넘긴다. 춤을 추고 있는 나, 어둠속에 반짝이는 조명이라는 유사한 환경때문인지 줌바시간동안 나는 잠시 20대로 돌아간다. 그 시절의 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 시절, 나는 엄마를 닮는 일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여자는 예쁘게 단장해야 한다'는 가르침에도 괜히 딴지를 걸고 싶었다. 여대에 다니면서 최대한 선머슴아처럼 하고 다녔다. 그랬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유혹적인 춤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무용을 전공한 엄마의 DNA에 끌려가고 있었다.
억압된 감정이 많았던 '그 시절 그녀'는 춤이라는 해소책이 있어 살수있었나보다...그렇게 조신한 모범생이 그렇게 뜨겁게 춤추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보다...엄마가 강요하는 여성상은 수용할수없었지만, 자신이 여성임은 포기하고 싶지않은 마음...엄마처럼 힘있는 여성이 되고 싶었지만, 넘사벽인 기준 앞에서 포기해버린 마음...엄마에게 사랑스런 딸이되고 싶었지만, 늘 못마땅해하던 엄마 눈에 들어보려고 애쓰다 지친 마음...자신 안의 '흑조'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 괴로운 마음...'그녀'에게는그런 복잡한 마음을 배출해낼 통로가 필요했겠구나...
'그녀'의 마음을 공감해준다. 그리고 '둘'이 함께 춤을 춘다. 마치 영화 <블랙스완>에서 백조 안에 흑조가 공존하는 그 모습처럼...
영화에서는 백조가 자신안의 '흑조'를 통합하지못해 분열되지만, 나는 흑조를 품은 백조로 살수있는 것이 반갑다. 내가 우아한 '백조'로 살 수 있었던건,내 안에 숨어 있던 '흑조'의 공로일게다.낄 때와 빠질 때를 제대로 알고 있던 절제된 '흑조'의 내공덕분에, 진짜 날라리가 되지않고 이자리에 '백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게다.
'흑조'에게...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다.
너는 20대의'그녀'보다 여유로와 보이는구나.
멋지게 무르익었구나...
나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나지 않아서 고맙다...
네 덕분에 나는,
그 시절보다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단다.너로인해 다른 '흑조'들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단다. 너로 인해 더욱 빛나는 백조로살 수있게 되었단다.어쩌면 너로인해 진짜 백조가 될수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