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1.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켄 로치 감독의 작품입니다.
사실 그의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노(老)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그는 영국 뉴캐슬에 거주하며 한 평생을 성실한 '목수'로 일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나이를 먹고 심장병을 앓으면서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죠. 그에겐 아직 충분한 능력과 경험이 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죠.
다니엘은 당장에 끊겨버린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의 제도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만든 제도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움이 절실하지만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합니다.
케이티 가족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싱글맘으로 어렵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케이티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당장 돈을 벌 수 없죠. 도움을 받기 위해 제도를 이용하려 하지만 역시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지원을 거절합니다.
이들은 무능력하거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찾아올 수 있는 불행한 상황을 마주한 것이죠. 하지만 국가의 제도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이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합니다.
처지가 비슷한 둘은 서로를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려운 상황을 함께 버텨나가죠.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원칙만을 강조하는 국가의 비인간적 시스템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지 못합니다.
없는 살림에 케이티에게 도움을 주던 다니엘은 더 이상 그녀를 도와주지 못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죠. 다니엘은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쳐서 퍼져버린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에게 도움을 받던 케이티 가족입니다. 혼자서 힘겨워하던 다니엘은 케이티 가족(그녀의 딸)이 내밀어준 따뜻한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영화는 정직하고 직설적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항상 동화 같을 수 없는 현실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가슴 아픈 결말은 역설적이지만 우리에게 그렇기에 연대하고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잊히지 않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비인간적인 제도로 자신의 요청을 터무니없이 거절한 곳을 나와 건물 벽면에 검은 락카를 칠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고 말하곤 건물을 나선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불통'으로 일관하던 관료주의란 벽에 직접 글을 씁니다. 'I, Daniel Blake(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시작되는 벽면의 글은 영화에서 몇 안 되는 통쾌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다니엘 블레이크와 케이티 가족이 지원센터에서 무료 음식을 받아가는 장면입니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지원소에 직원들은 찾아온 사람들이 창피하지 않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배려를 보여줍니다.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쇼핑'이라고 표현해주고 혼자 찾은 이들을 위해 옆에서 함께 해주는 모습들은 원칙 이전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적 제도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직설적으로 들려줍니다. 사회적 제도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자존심과 존엄성, 당연한 권리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개인이 이런 제도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다니엘이 혼자였다면 힘겨웠던 '항소'는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케이티가 혼자였다면 영영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혼자서는 힘들 수 있는 일, 지치는 순간들을 함께 한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켄 로치 감독이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받고 했던 소감이 더욱 뜨겁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