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을 걷다 Mar 26. 2019

제주 올레길 즐기기

제주 올레길 놀멍 쉬멍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놀멍 쉬멍은 '놀면서 쉬면서'라는 뜻의 제주 말이다. 올레길은 '놀면서 쉬면서' 걸을 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제주 올레길에 대한 정보는 (사)제주올레 (http://jejuolle.org)를 참고하면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얻을 수 있다. 또 코스 변경 정보나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는 사전에 미리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겹치는 정보도 있겠지만, 올레길을 걸으면서 나름 경험한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여유 있게 시간 잡기

올레길 각 코스는 4-5시간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6-7시간이 걸리는 긴 코스도 있다. 성인 남자 걸음으로 거의 쉬지 않고 걸으면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정도는 덜 걸린다. 올레길 걷기는 군대 행군이 아니기 때문에 장거리 걷기를 통한 체력단련이 목적이 아니라면 예상 시간보다 1-2시간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올레길 코스에 있는 주변 관광지에 들리거나 카페에 들려 차 한잔을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마음에 드는 경관이 있는 곳에서 어디든 주저앉아 충분히 여유 시간을 갖는 것이 올레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근처 숙소만 고집하지 않기

여러 코스길을 걷거나 완주할 목적으로 순서대로 걷는 경우 코스의 종착점이 있는 곳의 숙소를 선호한다. 올레길의 시작점/종착점이 그래도 큰 마을이나 관광 명소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숙소도 없고,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는 곳도 많다. 좋은 경관을 많이 보는 것만큼 좋은 숙소나 가성비가 괜찮은 숙소를 잡고,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 숙소를 잡고 서너 코스를 걸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다.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고 동네 도로를 달리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애써 걸으려고 올레길에 왔는데 숙소가 좀 멀면 어떤가?


한 코스 완주보다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 올레길을 걸어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올레길 걷기의 참 재미는 몇 코스, 몇 km를 걸었다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한 코스를 걸었다고 만족하기보다는 주변 경관을 최대한 즐기고, 안 가본 관광지가 주변에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서 가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하는 점이다.


하루 한 코스를 다 걷지 않으면 어떤가? 올레길의 정해진 길에서 조금 벗어나거나 가로지르는 다른 길로 가면 또 어떤가? 중요한 것은 '놀멍 쉬멍' 여유를 갖고 경관을 마음껏 즐기고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힐링'을 하는 것인데? 중간 스탬프 좀 못 찍으면 뭐 그리 대수인가?(안내센터나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가서 사정 얘기하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제주 올레를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크다.


먼저 인사하기

함께 올레길을 걷는 분들에게, 마주치는 분들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하면 내가 먼저 즐거운 마음이 든다. 동네를 지나며 주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젊은 사람'이 혼자 고생한다고 칭찬도 듣는다. 일부러라도 동네 슈퍼에 들려 마을 얘기하고, 근처 맛있는 식당 어딘지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다.


진짜 맛집은?

난 마트에서 맛있는 귤 사기가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농수산물 시장 단골 과일 상회를 가면 그나마 맛있는 귤을 먹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올레길에서 무인판매를 하는 귤이나 농장에서 직접 파는 귤은 전부 다 맛있다. 맛없는 귤이 육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 따서 익히는 귤이라서 맛이 덜할 수도 있다. 어디 귤뿐인가? 그동안 제주를 그리 많이 왔지만 돼지 키우는 농장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전국 어딜 가나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판다고 하는데 그 수요를 감당하려면 얼마나 많은 돼지를 키워야 할까 궁금한 적이 있다. 제주 흑돼지는 시에서 통합 관리하면서 출하량을 엄격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제주에서도 맛있는 흑돼지 고깃집은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아무 곳이나 가면 서울에서 먹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으로 찾은 맛집은 너무 소문나서 줄 서다가 시간 다 보낸다. 그리고 기대가 커서 실제는 '이 정도까지 줄 서서 먹을 만큼은 아닌데' 하는 경우도 많다.


귤은 올레길을 걷다가 만나는 농장에서 살 때 맛있는 귤을 살 확률이 높고, 그 자리에서 택배로 보낼 수도 있다. 진짜 흑돼지 고기 맛집은 펜션 사장님이 추천하는 동네 식당이나 마을 슈퍼 사장님이 알려 주시는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하지만 나에게 제일 맛있는 식사는 올레길 열심히 걷고 동네 작은 식당에서 먹는 그냥 한 끼 식사다. 그런 식사와 함께 하는 제주 막걸리가 있으면 뭘 더 바랄까 싶다.


동네 문지기 견공들 대하기

개를 무서워하는 탓에 올레길을 걷다가 동네에 접어들면 잔뜩 긴장을 한다. 저 멀리서 길 가운데 누워 있는 개라도 보면 멈칫하고 다른 사람을 찾거나 돌아가는 길을 찾기도 한다.


어디서 본 얘기인데, 동물에게는 사람에게 없는 능력이 있는데,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이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를 본능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내가 개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긴장하면 개 또한 그런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두렵거나 경계의 뜻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개를 좋아하는 애견인들은 동네 개를 보면 반갑게 얘기를 걸며 다가간다. 그러면 개들은 좋아서 꼬리를 흔들거나, 뭔가 불편하면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 도망가는 것을 많이 봤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개나 말은 대부분 외지 사람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특별히 자극하지만 않으면 달려드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난 개들을 보면 애써 무시하면서 내 감정을 속이고자 다른 생각을 하며 걷는다.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오늘은 어떤 술이 좋을까, 삼겹살, 오겹살, 갈치, 회. 안주는 뭐가 좋을까 이런 생각?)


아는 만큼 보인다.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좋을 제주지만, 제주말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말의 어원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가슴 아픈 과거지만 제주의 역사를 알게 되는 기회도 있고, 진짜 제주 향토 음식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기회도 만들 수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캐나다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각자 자기 나라의 유명한 곳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제주를 얘기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알고 있는 제주에 대한 지식이 너무 미천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동안 수십 번을 갔고, 유명 관광지를 가봤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데.


대중교통 이용하기

제주도는 도 전체가 관광지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다. 배차 간격이 자주 없는 버스도 있지만, 제주 버스 앱을 이용하면 시간을 맞춰 이용할 수 있다. 각 동네마다 콜택시도 많은 편이다. 가끔 택시의 불편함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제주시내나 서귀포 시내가 아닌 동네 콜택시 기사님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택시를 이용할 때는 미리 콜을 예약해서 부르는 것이 좋고, 아무래도 바쁜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좋은 팁은, 숙소의 사장님이나 식당의 사장님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부탁을 드리는 것이다. 한 번은 식당의 사장님께 부탁을 드려 택시를 탔었는데, 동네 주민이 불러준 손님이라면서 택시비도 깎아 주시는 경험도 했었다.



올레길은 위험할 수도 있다?

제주 올레길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2년과 2018년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또 간혹 올레길에서 멧돼지를 보거나 들개를 만난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과 굳이 비교가 안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그럼에도 자칫 올레길이 안전하지 않다고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가슴 아픈 희생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더 안전하고 더 많은 것을 제대로 관리하는 올레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레길 여행기에도 썼었지만, 곶자왈 같은 곳은 CCTV 등을 설치해서 범죄 자체를 예방하는 관리가 절실해 보이기도 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했었을 게스트하우스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관리도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만드는 올레길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던 아니던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환경을 잘 보전하고, 관리해서 후세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 제주의 올레길은 지금보다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힐링을 하고, 행복을 느낄 그런 곳이다. 올레길이 그런 곳이 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


불편함이 있었으면 제주올레에 알려서 개선하도록 제보를 하고, 사유지나 마을을 지날 때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어서도 안된다.


내가 걸었던 이 길이 내 자식과 후손도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더 아름다운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제주 올레길의 각 코스가 국립공원처럼 입장료를 낸다고 해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뒤늦게 (사)제주올레에 적은 금액이나마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올 해에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내 작은 마음이 우리 후세에 물려줄 자연 유산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를 걷다 - 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