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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Apr 11. 2018

피라네시의 감옥


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8)


쓸쓸하게 버려진 감옥.

아무도 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전설 속의 미궁 속으로

어디선가 한낮의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때 이곳에 머물렀던 수많은 노예들과

그 자신들도 수감자에 불과했던 간수들이 냈던

고함소리, 신음소리,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채찍소리,

무거운 도르래가 돌아가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

거대한 쇠사슬이 차가운 돌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이제 희미한 악몽의 기억으로만 남아

저 먼 곳에서 서글프게 메아리 칠 뿐이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들 어떠랴. 지금 이 지하 감옥은 완전히 버려진 채,

그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안전하게

'고독'이라는 음울한 그림자 속에 잠겨있는데.


또 이곳의 거대한 회랑을 지나가다

절망 속에 죽어갔을 해골 무더기를 발견한들 어떠랴.

몇 백년 전 그들의 고통은 이미 시간이 소독해 버린 지 오래인데.


필시 나의 정신 속에도 이런 장소, 출구 없는 감옥이 있으리라.

아무도, 심지어 나 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나의 한 조각이 정처 없이 떠돌다

긴 한숨을 내뱉으며 이미 죽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일.


그 어떤 생명도 깃들 수 없는 깊은 거대한 감옥 속에서

흔적도 추억도 고통도 공포도 괴롭히는 작은 미생물들도 없이

흰색의 해골이 되어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빛 태양을 하염없이 쬐고 있을지도.


이 고독의 수의를 두른 거대한 무덤의 문을 열지 말라.

쉿! 그 어두움이, 하염없는 숭고함과 두려움이 가득 담긴

신비로운 상자를 열지 말라. 



https://youtu.be/HXGLrZMrpuw

요요마, 바흐 첼로 무반주 연주곡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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