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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Jun 01. 2018

세이렌의 목소리

내 안에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폴짝폴짝 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저 멀리로, 더 멀리, 지리한 세상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서라고. 거리낌 없이 세상이 주는 모든 기쁨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환멸, 환멸을 축복으로 여기라고. 책상 앞에 앉은 나에게 속삭인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 속 온갖 모험을 직접 살아보라고.


나는 거대한 망치로 이 내면의 악마를 두들겼다. 법관처럼, 엄숙한 양복을 걸친 채 말했다. 망령! 너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불행을 두려워하는 마음에게 네 자리는 없다. 네 변덕은 노년기의 쓸쓸한 죽음을, 빈곤과 가난과 손가락질을 불러온다. 그러자 어느 날 정말로 그 악마는 죽어버렸다. 죽은 건지, 숨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곧 온순해졌고, 삶은 적당히 편했고, 또 <만족>이라는 덕목을 배울 수 있었다. 수천만명의 역사가 삶을 정당화해주었다. 이 악동의 무덤 위에 집을, 기둥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어느 한밤중,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들려온다. 내가 묻어버린 <그것>의 목소리가. 조롱하고, 야유하고, 분통을 터뜨리며, 복수를 부르짖는다. 언젠가는 집과 기둥을 종잇장처럼 단숨에 구겨 무너뜨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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