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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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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a Jul 08. 2018

우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정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세상의 자식처럼 뛰어놀았다. 어느 날 아이는 연못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형상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너는 누구니?' 아이는 물었다. 하지만 형상은 그저 미소 지으며 침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귀엽고도 성가신 것이 태어나 아이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사이좋은 친구처럼 들판을 뛰어다녔다. 어느 날은 정신이 팔린 나머지 너무도 먼 곳까지 뛰쳐나오게 되었다. 아이는 언덕 위에서 뜀박질하며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향,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오로지 멀리 펼쳐진 황무지뿐이었다. 아이는 울며 그 정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영원히 닫혀버린 그 문을.


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닐 만큼, 그래서 눈빛에 어렴풋한 슬픔의 흔적을 지닐 만큼 말이다. 그렇게 떠돌기를 한참, 아이는 땅이 끝나는 곳에서 무서울 정도로 얼어붙은 세계를 보았다. 푸른색 빙하가 수천만 년의 잠 속에 빠져 있는 곳, 넘실대는 바다가 무섭도록 포효하는 가장 외로운 땅이었다.


그때,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짐승이 처음으로 포효하며 그를 물었다. 짐승은 아이와 함께 이미 그만큼이나 자라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상처 입은 아이 역시 처음으로 말했다. '나는 갈망한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동료들을 찾을 수 있다는 어디멘가의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찾고 또 찾았다.


그 풍경을 본 이후로부터 자신의 마음속에도 똑같은 풍경이 깃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이 심연 속의 풍경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 마법 같게도, 비밀이 풀릴 것이고 얼음은 녹을 것이며 잃어버린 장미의 낙원은 되살아 날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의 황량한 사막이나 무시무시한 정글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인데, 그러면 그곳에서 그들은 함께일 수도 있으며 결국 그렇다면 그곳은 더 이상 황량하거나 무시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며, 삶은 흘러갔다. 골목을 걸으면 어떤 모퉁이에서는 짐승이 도사리고 있었다. 단숨에 튀어나온 그것에게 물리면 고통을 느꼈다. 욕망이었다. 또, 많은 추억들이 희미해져 갔다. 정원에서의 기억도 유년기의 의미 없는 행복한 한때처럼 덧없게 느껴졌다. 잃어버린 고향, 먼 옛적의 낙원은 아주 어렴풋한 전설처럼, 달콤한 사탕을 먹은 후 입 안에 감도는 옅은 쓴 맛처럼만 남았다.


그러나 눈을 번득이는 짐승, 처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태어난 이 숙명적인 친구가 그의 곁을 맴도는 한 그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도망갔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며 자신이 본 무시무시한 풍경을, 비밀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때때로 예고도 없이 짐승은 그를 물어뜯었다. 그러면 의심과 회의와 쓸쓸함으로 눈동자가 깊어졌고 문 닫힌 방 안에서 성큼성큼 걸으며 물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무엇을 찾는가? 저 도사리는 짐승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언젠가는 희미하게 풍겨오는 장미 냄새를 맡았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가득 차 목이 메인 채로,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물었다. '당신은 장미가 피는 정원을 아나요?' 그러자 이방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는 이방인을 따라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더 세상이 멀어져 갔다. 개울을 건넜고 푸른 초원을 가로질렀으며 아침 이슬을 맞으며 조용히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는 잡목들을 헤치고 오솔길에 들어서자 이제 대기 중에는 장미 향기가 가득했다. '당신은 어떻게 길을 잃지 않은 거죠?' 그는 말했다. '글세요, 이곳은 정말이지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곳이라서요.' 이방인이 대답했다.


'이제는 거의 다 왔어요.' 우 거친 초목 뒤에서 짐승은 느긋하게 누워 잠에 빠져 들었다. 드디어 이 길고도 지루했던 여정이 끝나는 것일까? '당신의 정원에 들어가도 될까요?' 그는 물었다. 이방인이 입구에서 약간 비껴 섰다. 그곳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한번 불어오자 너무도 향긋했던 장미 향기는 날아가 버렸고 붉은색인 줄만 알았던 꽃송이들은 여명이 걷히자 그저 샛노란 색을 뽐내며 흔들릴 뿐이었다. 그는 꽃송이들이 매달린 덩굴을 쓸어 넘겼다. 거기에는 삭아가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들이 이방인이 아니게 되는 날에만, '

비바람에 깎인 탓인지 그다음 문장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장미를 볼 수 없는 거죠?' 그는 물었다. '그건 우리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 대답했다. '우리가 이방인이 아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저도 몰라요, 세상의 그 누구도 모르죠.' 이방인이 말했다. '함께 걸어온 이 모든 길에도 불구하고!' 그가 슬퍼했다. 그러자 잠자고 있던 짐승이 탄식소리를 듣고 깨어나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 볼래요?' 그는 이방인의 귀에다 자신이 본 것들, 치명적인 비밀들에 대해 속삭였다. 이방인의 눈에 처음으로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짐승. 깨어난 그 짐승은 질투라도 하듯 이방인의 옆구리를 힘껏 깨물었다.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슬퍼하며 말했다. '우리는 신이 아니에요.'


'그래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인간에 불과한 이상, 나의 숨결은 당신의 꽃들을 시들게 할 테고, 이 흡혈 짐승의 갈증은 만족을 모른 채 또, 그리고 또 잔인한 제의를 위해 당신의 피를 원할 거예요.'


'나는 사막을 보았어요. 앞으로도 이 정원은 나에게 항상 열려있을 테지만, 이제는 흔들리는 꽃들의 그림자 속에서 적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을 엿보게 될 거예요. 정원의 문이 닫히지 않았던 건, 내가 한 번도 그 무시무시한 풍경을 보지 않아서였어요.' 이방인이 말하며 돌아섰다. 이별이었다.


'미안해요.' 그가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은 그저 너무 멀리까지 가보았을 뿐이에요.' 이방인이 말했다. '그저 너무나도 솔직했을 뿐인 거예요.'


마을로 돌아온 그는 거대한 석관을 세웠다. 그르렁대는 짐승을 몰아넣은 후 석관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 위에다 돌무더기를 깎아 만든 벽돌로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바쁜 노동의 나날들이었다. 장미라던지, 정원이라던지의 기억들은 견고한 돌판들에 비하면 너무도 신기루 같은 허깨비에 불과해서, 왜 그토록 그것들을 찾아 헤맸는지 그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한 시절은 그렇게 영원히 지나가며 닫혀갔다.


하늘에는 찡그린 구름들이 몰려왔다. 천둥이 쳤고, 번개가 허공을 갈라놓았다.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오래,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러는 사이에 그는 수많은 것들과 싸웠다. 날씨와 싸우기도 했고, 탑을 무너트리려는 탐욕스러운 이웃 마을의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으며, 그들이 보낸 까마귀 떼들과, 탑을 좀먹어 들어오는 넝쿨들과 싸웠다. 고요한 날에는 지하의 감옥에서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굵고 낮은 신음소리와 싸우기도 했다. 물론 탑, 그 자체와도 싸웠다. 흰 탑은, 이유는 몰랐지만 인생의 고통과 노고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쌓아야만 할 무언가라고 생각됐다. 아이의 눈은 이제 인내와 고통을, 노동을 알았다.


탑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뿌연 먼지구름 속에 휘감겨 있었고, 사이사이로는 외로운 탑들이 쌓아 올려져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허무한 안개에 휘감긴 공동묘지를 연상시켰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건너편 탑에도 지금 나처럼,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위태위태한 벽에 기대 있을까. 아! 그러나 벽은 너무도 두텁고 시야를 가린 먼지구름은 너무도 탁해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석관 속에 누워 차가워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얼마만이었을까, 잠시 비 구름과 먼지 구름이 걷혔고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먼 옛날처럼, 햇빛 한 줄기가 비쳤다. 그는 진흙 투성이의 맨 땅으로 내려섰다. 석관은 비와 바람 덕에 검게 변색되어 깎여있었다. 그는 울퉁불퉁하고 검은 돌 표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놀랍게도 비바람은 이런 문장을 새겨 놓았다.


뒤를, 뒤를 돌아보라.

정원을, 장미를, 얼음의 땅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태초로 돌아가, 기쁨에 사무쳐 부르곤 했던 의미 없는 멜로디가 저 언덕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자신이 공들여 쌓고 있었던 석탑을 보며 그는 너무도 오랜만에 물었다. 왜? 왜? 무엇을? 반짝반짝 빛나는 줄만 알았던 매끈한 돌의 표면들이 견딜 수 없게 지루해 보였다. 그 표면에서라면 어떤 꿈이라도 미끄러질 것이다. 그래서 진흙탕 속에 처박히겠지. 아!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누군가 답이라도 주시길! 그는 소리쳤다.


그러자 지진 같은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쳤다. 안돼! 저 탑을 쌓아 올렸던 그 수많은 시간, 낭비된 삶들, 아니, 나의 삶은 끝끝내 무너지고 있어. 먼지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것은 무너져 내렸다. 폐허의 틈새에서 검은색 갈기를 가진 익숙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마치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둠과 망각을 먹고 자랐다는 듯, 이글거리는 붉은 눈이 심장마저도 꿰뚫을 정도로 오싹하게 노려보았다.


'이제 알겠다! 단 하나의 사실만은, ' 그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너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지.' 짐승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짐승이 그를, 또 어느 때는 그가 짐승을, 그들은 쫓고 쫓기는 중에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누군가는 이곳까지 와본 적이 있었을까?' 그는 묻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시대는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버렸으니까.' 저 먼 곳에는 유달리 높게 쌓인 흰 석탑들만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 씁쓸한 물결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곳에 다다르겠지.'


그리고 그랬다. 이제 그는 처음으로 짐승과 대적하게 된 무시무시한 땅에 도착해 있었다. '바로 여기야.' 그가 얼음 위에 서서 오만하고도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나는 정원도, 사랑도, 업적도,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닌 평범한 삶 조차도 얻을 수 없었다. 너는 나에게서 그러한 것들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너를 쏘는 것은 완벽하게 정당한 행위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피를 흘린 것은 그가 아닌 짐승이었다. 하지만 짐승은 처음으로,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녀석! 넌 지금 너 자신을 쏜 것이다. 내가 여기 얼음 위에 피 흘리며 죽어갈 동안, 너의 숨결 역시 차가워질 것이고 방아쇠를 쥔 손도 힘이 빠지게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은 먼지로 돌아가게 되겠지. 

너는 나를 죽이는 대신 나와 함께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나를 피하거나 가두는 대신 나와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를 적으로 여기고 내쫓는 대신 나의 목소리를 따랐어야만 했다.' 짐승이 말했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장미 정원은?' 그가 말했다.

'그랬다면 나는 너를 그곳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수많은 노고와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비로소 굳게 닫힌 그 문은 열렸을 것이다. 그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지. 그곳에는 장미와 함께 달콤한 과일들이 열리며, 매 순간 피어오르는 영원한 봄이 계속된다지. 그곳에서는 너, 나, 이러한 단어들이 필요가 없어.' 짐승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졸음이 덮쳐왔다. 그는 가만히 앉아, 귀를, 귀를 기울였다.


'그럼 그곳에 가 본 사람은 있는가?' 그가 물었다.

'그 누구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짐승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네가 날 인도했을 거라고 확신하지?' 그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그저 희망할 수 있을 뿐이지.' 짐승이 답했다.

'이 잔인한 미스터리는 죽음이라는 열쇠로도 풀리지 않는군.' 

그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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