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송이다. 정확히 따지면 문송도 아닌 예체능송이랄까? 해서 기초 지식이 남들에 비해 살짝 부족하다(논리의 비약이다). 고교시절 국영수는 주 2시간씩이었고, 물리는 고작 1시간이었다. 일찌감치 공부와는 안 친하게 지낸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수업 시간도 일반고에 비해 한참 모자랐던 탓에 내가 무엇을 안 배웠고 또 모르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불혹이라는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반쪽짜리 세상에 갇혀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그때의 충격이란 머릿속에서 번개가 내려치고, 온몸에 털들이 감전되듯 한 올 한 올 곤두선 느낌이었다. 바로 이 세상이 원자, 전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실 때쯤 '알고 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무렵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플라즈마 기술 기업이었다(운도 없지). 기업 마케팅 담당자로 이 기술을 홍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고, 나 스스로도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기술을 홍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벼락치기 공부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닌 '퇴사하느냐 감내하느냐'였다. "과학이 먹고사는데 무슨 소용 있냐?"는 이 흔한 말이 나에게 먹고사는 문제가 된 것이다.
좋은 카피는커녕 틀리지 않은 카피 한 줄을 쓰기 위해 몇 날 며칠 자료를 뒤지고,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영어, 한문, 국어의 사전적 정의를 비교해 보고, 동영상 자료들을 찾아보며 나름의 상상과 유추를 통해 이해를 해보려 용을 썼다. 그럴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더 방대한 정보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는 기가 막힌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코피를 몇 번 쏟은 후 비교적 빠르게 카피를 쓰게 되었을 때, 그동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의 벅찬 감격은 지금도 인생에 있어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자 이제 진짜 풀어봅시다!"
화이트보드에 수학 공식을 적기 시작하더니 설마 했는데 화이트보드 전체를 알 수 없는 수학 기호들로 빼곡히 채우기 시작한다. '어? 진짜 각 잡고 하네!' 과학의 언어는 수학이라지만 진심을 다해 화이트보드를 채워간다. '가볍게 책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 아니었나?' 아니 그보다 '왜? 무엇 때문에 수학 공식을 풀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렇게 진심으로 수학 공식을 풀어내는 모습에 나는 적잖은 당황과 놀라움 그리고 불혹에 들어서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었던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감탄사가 나왔다. '멋지다! 이곳은!' 먹고사는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도 이렇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씨이면 또 어떤가. 아등바등 삶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탐닉하는 게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가! 이 모임은 재미난마을의 '재미난과학책모임, 책책산중'에 초대되어 처음 나간 날의 모습이다. 먹고사는 것과 하등 관계없는 과학책들을 선정해서 각자 읽고, 월에 한 번씩 모여 이야기를 한다. 책은 물론 쉽지 않다. 과학책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학책을 왜 읽냐고? 내 대답은요. '먹고사는 것만 하다 보면 인생이 너무 건조하잖아. 가끔 여행도 가고 디저트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