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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냉이 김치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장점 세 가지를 말해주세요. (2편)

by B급 사피엔스


우리 집 막냉이는 작고 가볍다. 어디든 폴짝 뛰어오르는 재주가 남다르다. 야옹~ 울음소리와 함께 가끔 냥냥 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엄마 껌 딱지다. 화장실 앞까지 졸졸 따라가 문 앞에 문지기처럼 앉아있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를 찾는다. 아쉬운 대로 꿩보다 닭인 것이다.


애교가 만점이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킁킁 냄새를 맡고 몸을 비비고, 살포시 기대어 안긴다. 팔이나 다리에 턱을 궤고, 커다란 호박색 눈을 꿈벅꿈벅 뜨다가 졸린 듯 눈을 스르륵 감는다. 아주 느릿느릿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머리나 등을 빗겨주면 그릉그릉~ 소리를 내다가 자리에서 풀썩 드러눕는다. 가끔은 혀로 손등을 핥아 주기도 한다.


김치치가 온 이후로 우리 집이 따뜻해졌다.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에 온기가 스민 것이다. 막냉이의 등장으로 형아가 된 아이는 김치치를 통해서 배려라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자기 용돈을 아껴가며 선물도 사준다. 잘 놀아주진 않지만 쓰담해 주는 걸 좋아하는데, 힘 조절이 투박해 종종 냥냥 편치를 맞는다. 그래도 좋다고 깔깔대며, 형아가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가끔은 애정 표현이 과해 괴롭히는 것도 같다.


예상치 못한 점도 생겼다. 손님을 맘 편하게 초대하지 못한다. 스트릿 출신인 막냉이는 쫄보 그 자체다. 집에 손님이 오면 후다닥 도망가, 침대 속 이불에 숨기 바쁘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보름 동안이나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있었다. 또 김치치가 이방 저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모두 열어놓고 산다.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 밤 10시가 넘으면 엄마랑 하는 사냥놀이에 거실을 양보한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던 심야 영화 시청도 어렵게 됐다. 여행도 줄였다. 가더라도 김치치가 혼자 있는 게 마음이 쓰여, 1박 2일 정도로만 다녀온다.


처음 김치치를 입양할 때 와이프가 앞장섰다. 자본주의에 물든 나는 반려동물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을 먼저 계산했지만, 한 달 사룟값 5만 원이란 말과 아이의 협동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그때 인터넷 검색이라도 좀 해볼걸, 한 달 사룟값 5만 원이 말이 될 턱이 없다. 화장실 모래 값 만해도 그것보다는 더 나온다. 고양이 장난감은 매달 어디서 그렇게 새로운 게 뿅~ 하고 나오는지. “이건 또 언제 샀어?” 하면 눈치 빠른 와이프는 그런 질문 자체를 틀어막으려, “치치야 너네 아빠가 니가 좋아하는 장난감 사는 돈이 아까운가 보다. 귀엽다고 쓰담쓰담하고, 건강하게 같이 오래 살자고 할 때는 언제고, 돈 쓰는 건 싫은가 보다” 이런다. 아이도 가세한다. “아빠가 너무하네~ 잘 못 했네~”라고.


김치치는 길거리에서 구조된 임시 보호 중인 새끼 고양이었다. 구조할 때 영상을 보니 어두운 폐가에 버려져 혼자 덜덜 떨며, 울고 있었다. 아이는 가끔 말한다. 가족을 잘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고. 사랑도 듬뿍 받고, 장난감도 많다고. 그러면서 나쁜 집으로 안 가서 복 받은 걸 알아야 한단다. 형아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이상하게 전개하며, 귀찮다는 듯 피해 다니는 김치치를 졸졸 따라다니며 쓰다듬어 준다.


"우앙~! 야옹~ 흐응~”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참 궁금하다. 김치치랑 의사소통이 된다면 여행도 함께 다니고, 동네 산책도 가고, 여기저기 이동할 때 차에 태워 바람도 쐬며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 텐데. 집에서만 생활하는 김치치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창문 밖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엄마 품에 쏘옥 들어가 안길 때나 지그시 바라볼 때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를 만나서 참 행복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내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중문 앞에 서서 날 보며 “야옹~” 할 때면, ‘아빠~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지 궁금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한다. 따뜻하고, 밝아진 우리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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