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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Dec 19. 2023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최초 추상화를 그린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100년 만에 발견된 추상 미술의 선구자


▲ 힐마 아프 클린트 ⓒ 마노 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최초의 추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


지금까지의 미술사에는 추상화의 선구자로는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스웨덴에서 태어난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는 그보다 앞서 추상화 작업을 했다. 그녀의 작업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숨겨져 있다가 20세기 말에 세상에 공개되면서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그림도 잘 그렸지만,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지적인 여성이었다. 유럽의 미술 아카데미 중에서 여성의 입학을 거부하는 곳들이 많을 때였지만, 그녀는 스톡홀름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화가가 된 그녀는 시대를 앞서는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권위적인 미술계에서 그녀는 여성이기에 늘 차별을 당했다. 200명의 미술아카데미 회원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는 행사에서 그녀의 그림은 전시장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단 두 점만 걸렸고, 아무도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1880년 어린 여동생 헤르미나의 죽음 이후 그녀는 영적 신비에 관심을 품고 신지학에 빠져들었다. 신지학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연구하는 종교적 사상으로 '신들의 학문' , '신성한 지혜'라는 의미이다, 클린트는 신지학 강령회에 지속해서 참석하면서, 추상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기하학적 형태, 원색, 반복되는 패턴 등을 사용하여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당시의 미술 경향에 얽매이지 않고, 자가 내면과 영감을 따라 작품을 완성했다.

▲ 영화 '힐마'(Hilma)의 한 장면 ⓒ 영화사 제공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남성이 지배하는 그 당시 미술계에서 그녀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녀는 미술협회에서 탈퇴하고,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혼자만의 작업을 이어갔다. 클린트는 자기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동시대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줄 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 20년 동안 자기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의 유언은 1966년까지 지켜졌고, 시간이 흘러 그 후 그녀의 작품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림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작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 20년 동안 대중들에게 작품을 보이지 말라. 나의 작품을 미래에 기증한다." 세상이 그녀를 알아본 데는 42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6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2018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을 통해서다. 2018년 뉴욕의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이 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인 60만 명이 몰려들었다. 2019년부터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 순회 전시에는 모두 1천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러 왔다. 그녀의 그림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었다. 

▲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 전시회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여성이란 이유로 잊힐 뻔한 추상화가 재조명하기


한 예술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한 사람과 그의 생애를 아는 것일 뿐 아니라, 한 시대와 사회를 아는 것이고, 그 서사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이 되어 줄 것이다. 작가의 생애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는 또 다른 영화 '힐마'(Hilma)가 있다. 아쉽게도 극장에서 만나기는 힘들고, 11월 막을 내린 제12회 스웨덴영화제 상영작으로 관객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삶을 중심으로, 작가가 되기 전에 모습에서부터 여성 예술가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도전, 그리고 그녀가 추구했던 이상을 보여준다. 극화한 영화로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데 수월했다. 

▲ 다큐멘터리 포스터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는 20일 그녀의 삶과 작품을 다룬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Hilma af Klint: The Secret of her Paintings)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는 아프 클린트가 남긴 작품 1천500여 점 가운데 대표작들을 보여주면서 그녀의 생애를 조명한다. 큐레이터와 미술사학자 등 전문가와 유족도 등장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클린트의 작품 그녀의 생애를 추적하며, 그녀가 왜 최초의 추상 화가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접한 작가의 삶과 작품에 더욱 관심이 생긴다면 작가의 평전을 탐독하기를 권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삶과 작품을 다룬다. 저자 율리아 포스가 그녀의 작품과 유품, 그리고 작가의 생애를 꼼꼼하게 조사하여, 그녀가 최초의 추상 화가가 된 이유와 그녀의 작품 세계를 긴 호흡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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