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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Sep 20. 2023

48. 돈 있으면 다야? (1)

물론 이 또한 내가 겪은 소수의 이야기

나는 대학생활 내내 주말알바를 했다. 여러 종류의 알바를 거처 정착한 카페 알바가 있었는데, 강남의 고급주상복합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소속된 입주민들을 위한 카페였다. 이곳이 비록 내가 살던 곳에서 왕복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었지만 오래 일을 했던 이유는, 일단 시급이 다른 카페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높았고, 입주민들만 이용하니까 일이 덜 바빠서 틈틈이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은 정말 편했다. 다른 직원 없이 나 혼자 오픈하고 나 혼자 마감하는 곳이라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오전 오후로 한가할 때는 카운터에 앉아서 전공책 펴놓고 공부도 하고, 컴퓨터로 과제도 작업할 수 있어서 주말알바로는 최고였다.


한 가지, 이곳에서는 입주민들이 왕이었다.


이 카페에서 처음 일하게 되어 처음 인수인계를 받을 때, 두꺼운 노트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 노트에는 손님들의 동호수와 인상착의, 특징, 즐겨 주문하는 메뉴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특히 자주 오는 손님들은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있었고. 보통 주말에 오는 손님과 주중에 오는 손님들이 다르긴 했지만, 그 내용을 모두 숙지하라고 인계받았다. 왜 이렇게 일을 어렵게 하나 싶었지만 그 이유는 첫 주문에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어? 아가씨 새로 왔네?” 할아버지 네 분이 골프백을 들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첫 손님인 만큼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했다.


“귀엽게 생겼네. 고등학생 같아? 인수인계는 받았지?” 그러고는 네 분이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꼰 채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응? 뭐지?’


나에게 믿을 것은 두꺼운 노트뿐. 카운터 뒤로 몸을 숨기고 후다닥 노트를 뒤적였다.


찾았다. [골프 할아버지 네 명, 안경 - 1동 3302호 따뜻한 아메리카노, 큰 키 - 1동 1002호 덜 뜨거운 라떼, 뚱뚱 - 1동 2301호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각설탕 한 개 따로 담고 로투스 두 개…]


보통의 입주민 카페에서는 입주민이 들어오면 카운터로 와서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은 뒤 음료가 완성되면 직접 가지고 가서 마신다. 물론 반납도 셀프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손님이 들어와서 눈인사만 하고 그냥 자리에 앉는다. 눈인사도 감사할 따름이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앉아 계실 때도 있다. 그러니 따로 주문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인상착의를 알아보고 항상 주문하는 메뉴를 빠르게 기억해 내고 제조해서 내놓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원래는 입주민 카드를 태그 해서 관리비에 부과시켜야 하는데, 이들은 카드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인상착의 하나로 메뉴와 동호수를 모두 기억해 내야 하고 포스기에 수기로 입력해서 해당 세대의 관리비로 달아놓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직접 음료를 찾으러 오고 반납도 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무조건 앉아서 음료가 오기를 기다렸고 일어날 때도 몸만 일으켜 나갔다.


원래는 입주민 카드를 태그 해서 관리비에 부과시켜야 하는데, 이들은 카드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인상착의 하나로 메뉴와 동호수를 모두 기억해 내야 하고 포스기에 수기로 입력해서 해당 세대의 관리비로 달아놓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직접 음료를 찾으러 오고 반납도 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무조건 앉아서 음료가 오기를 기다렸고 일어날 때도 몸만 일으켜 나갔다.


노트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오래 일하다 보니 그쯤이야 금방 익숙해졌다.


그런데 처음 한두 달 일할 때는 알지 못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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