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람 Sep 07. 2023

패키지만 바꿨는데, 맛이 바뀌었다고 항의가 들어왔다

데이터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 감정 휴리스틱

리브랜딩, 그 무거운 도전

액티브한 이미지로 새롭게 태어난 이니스프리



이니스프리는 올해 6월,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 이미지를 벗어나 액티브 스킨케어 브랜드로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브랜드의 의도를 떠나 많은 고객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내 주변의 브랜드 마케터들 또한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에 공감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움이 더 컸는데 비슷한 실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직관과 구분 사이를 헤매다


2018년 초까지 사용된 브라운백 커피의 패키지



브라운백 커피는 브랜드 론칭 초부터 현재까지, 그 이름에 충실하게도 '브라운백'에 '커피(원두)'를 담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물론 브라운백 커피만이 이런 브라운 패키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갈색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커피업계에서 가장 많이, 흔히 사용되는 색이다.



구글에서 'coffee bean package'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대부분이 크라프트, 갈색 패키지다.



브라운백 커피가 브라운 패키지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떻게 보면 '게으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나 직관적인 네이밍과 패키지는 실패할 일도 없지만, 동시에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하기도 어렵다.


브라운백 커피가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점점 규모가 커지던 2017년, 브랜드 마케터의 고민이 시작됐다.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다른 브랜드와 구분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건데... 우리는 어떻게 (시각적으로) 차별화해야 할까?


물론 이런 고민은 브랜드 마케터의 것만은 아니었다. 디자이너분 또한 디자인 방향성과 일관성을 고민하다가, 도발적인(?) 물음을 던졌다.



브라운백 커피, 꼭 '브라운'이어야 해?



이 물음과 함께 리브랜딩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브라운백은 사실 '갈색 가방'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식사를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가져와 식사와 함께 진행하 미팅을 의미하는 '브라운 백(Brown bag)'과 '커피(Coffee)'를 합쳐 만든 이름으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캐주얼하고 편안한 커피 문화를 의미한다. 자신이 원하는 식사를 담아 오던 것처럼 고객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담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브라운백 커피가 '브라운백'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고객의 취향에 맞는 원두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컬러가 바로 오렌지. 브라운백 커피가 커피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행복함과 긍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게 목표였고, 브라운의 연장선에 있는 색이기도 했다.



리브랜딩 이후 바뀐 패키지. 2018년에 (잠시) 사용되었다.



리브랜딩에 따라 패키지도 변경했다. 오렌지를 포인트 컬러로 하여 경쾌한 느낌을 살린 디자인이었는데, 브라운백 커피가 시도한 것 중 가장 밝은 색이었다.


새로운 패키지로 출고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눈에 띄는 VOC들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몇 개월째 먹고 있는 원두인데, 요즘 맛이 변한 것 같아요. 신맛이 너무 강해요.



당시 브라운백 커피는 재구매율이 70~80%에 육박할 정도로 꾸준히 사용한 고객들이 많았고, 특히 자신의 취향에 맞으면 몇 개월 이상 같은 제품만 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제품의 맛이 변했다는 건 분명 위크 시그널(Weak Signal)이었다.


제품을 받아 회수해서 다시 맛도 보고, 로스팅 히스토리를 확인해 온도, 로스팅 포인트, 원두 비율 등 맛에 영향을 주인 요소들이 바뀐 게 있는지 확인도 했다. 하지만 내부 검수 결과, 제품에도 문제가 없었고 원두 레시피도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하나, 패키지였다.



감정이 이성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오렌지 패키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다. 브라운백 커피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패키지 중 가장 빠르게 폐기된 디자인이었다. (물론 디자인만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를 두루 고려했을 때 리디자인 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패키지만 바꿨을 뿐인데 맛을 다르게 느끼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당황스럽고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실패 사례들이 주는 배움이 크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은 실패 확률을 줄여주지만, 데이터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격, 품질과 같은 이성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브랜드다움, 기업 문화 같은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요인까지 생각해야 하는 브랜딩의 영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감성 휴리스틱]
여러 형태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이성이 아닌 감성이 휴리스틱으로 작용하여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만을 할 것 같지만, 때로는 감성이―브라운백의 경우에는 시각적인 요인(컬러)가―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결국 브랜드 마케터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비즈니스 차원의 목표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브랜딩은 결국 고객 경험의 설계고, 브랜드 마케터는 고객 경험 설계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