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의 장르는 잔나비

출근길 아티스트 리뷰: 잔나비

by 느쾀

사실 잔나비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게 된 건 1년 전쯤이었던 거 같다. 작은 홍대 공연장까지 쫒아갈 만큼 열성적인 잔나비 팬을 친구로 둬서 그런가, 그 친구 덕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갈 때마다 잔나비의 메인 보컬(그땐 이름도 몰랐다)의 부스스한 긴 머리카락이 늘 날 반겨주었다. 그땐 노래를 들어볼 생각은 없었고, 그냥 보컬이 잘 생겼네? 혁오 밴드랑은 좀 그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정도였다. 그렇게 1년 동안 잔나비의 존재만 알고 지내다가 좋아하는 딩고 채널에서 100초 안에 듣는 잔나비 명곡들이라는 콘텐츠를 봤는데(사실 이것도 100초 안에 듣는 노을 명곡들 들을라다가 잘못 눌렀다)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다. November Rain이라는 노래가 그중에서도 참 좋았기에 하나씩 찾아들어봤다. 그런데 노래 하나하나 각각의 매력이 듬뿍 담겨있었지만, 잔나비 노래는 하나같이 출근길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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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잔나비의 소개를 하자면 5인조 밴드고, 모두 92년생 원숭이(잔나비) 띠라서 밴드 이름을 원숭이, 아니 잔나비로 지었다. 최정훈(보컬, 리더), 유영현(키보드), 김도형(기타), 장경준(베이스), 윤결(드럼)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 노래의 작사는 최정훈이 한다. 슈스케에도 나온 적 있는데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

<전설>, 2019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사실 누구나 지금 당장 카카오톡 친구 창을 보면 적어도 10명이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 놓았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 좋으니까 다들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서 ‘나 이 노래 들었는데 핵 좋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 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꺾어 버릴 수는 없네
미련 남길 바엔
그리워 아픈 게 나아

가사가 참 서정적이고 예쁘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는 옛날 느낌이 물씬 나서 <응답하라 > 시리즈의 BGM이었다면 얼마나 잘 어울렸을까 막연히 상상한다. 권태기가 와서 서로 사랑을 주는데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한 노래라 그런지 따뜻하다.

<November Rain>, 2014

[November Rain]

잠깐 들은 이 노래는 잔나비의 모든 노래를 들어보게끔 만드는데 충분했다. 가성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노래는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보통 락 발라드나 발라드를 들을 때 이수나 임창정 같은 소름 돋는 진성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땐 가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벽난로 앞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느낌이라면 <November Rain>은 으슬한 날씨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는 느낌.

기억 속에 노벰버 레인
살며시 두 눈가에 맺힌다 또 맺힌다
들려오는 빗소리에
감춰둔 기억마저 젖는다 오 젖는다
잊힐 수 없어
기억은 계절을 흘러
비가 된다
눈이 되지 못한 채.
<로켓트>, 2014

[로켓트]

이 노래는 잔나비의 데뷔곡이자 이 밴드가 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곡이다. 퀸의 <Killer Queen> 느낌도 있고 <Bohemian Rhapsody> 느낌도 있다. 이 노래를 듣고 확신했다. 잔나비의 장르는 한정 지을 수 없다. 락도 아니고, 락 발라드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니다. 그냥 잔나비다. 퀸이 그저 퀸이었듯 잔나비의 장르는 잔나비고, 그래서 다른 인디 밴드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다른 모든 인디 밴드들이 잔나비를 벤치마킹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Give me some love 저 달을 밝히려면
필요한 전기 그 love love
너와 내가 알콩 달콩 돌리는 그럴싸한 자가 발전기
love love love


<전설>. 2019


[신나는 잠]

이번 <전설>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사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도 좋지만, 난 개인적으로 <신나는 잠>이라는 곡이 <전설> 앨범에선 제일 좋다. 인턴 생활 1달 차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잠이다. 밤에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눕는 순간 그렇게 설레고 행복할 수가 없다(물론 출근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 마음이 <신나는 잠>엔 잘 담겨있다. 절절한 사랑, 이별 노래가 아니라서 더 좋다. 그냥 공감되고, 신난다. 이 노래를 들으면 오늘 밤에 더 신나게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비단옷을 입고 돌아온 고향
나의 침대여
손을 들어 환영해주오
잠들자
포근한 잠 이불을
턱 끝까지 차올리면서
내쉬는 고귀한 한숨이 있는 곳
잠들자

[꿈과 책과 힘과 벽]

이 곡 역시 <전설>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 살짝 어두운 출근길에 들으면 리얼 감성 도둑이다. 잔나비가 노래를 만들 때 담겨있는 주제 의식이 이 노래에 잘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어른은 되기 싫은 순수한 영혼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사실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다 들어보는 걸 추천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잔나비의 5 곡만 이 글엔 담았다. 사실 잔나비는 이제 인기가 너무 많아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뭐 어떤가. 난 잔나비에 대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잔나비 노래를 못 들어본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라 믿는다. 속는 셈 치고 한 곡 들어 보면 '어라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플레이리스트에 잔나비 노래 전곡을 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잔나비가 상상마당에서 작게 공연할 때 가봤어야 했는데.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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