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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9. 2018

낫 투데이 20180129

통증과 공포


여태까지의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은 글을 쓸만한 컨디션은 아닙니다. 앓아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통증이나 구강의 상태나 제반 정황이 키보드로 글을 쓰고 온라인에 업로드를 하고 편집을 하고 사진을 올리고 하는 작업을 할 만큼 안정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죠. 


안정도 중요하지면 더 힘든 건 집중력입니다. 한 십분 이십 분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 한편 쓰고 편집하고 하는데 못해도 서너 시간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합니다. 거기다가 글을 나눠서 쓰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글을 쓸만한 상태가 아닌데 써야 할 것 같아서 조금 힘들게 쓰고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면 내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예정이고 거기서 또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지만 여태껏 너무 긴 시간 동안 소식을 못 전해드렸고 또 안 좋은 변화가 오면 앞으로도 상당 시간 동안 소식을 못 전해드리게 될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상황은 그닥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꾸준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게 참 특이하죠. 보통의 병이라면 영양 공급 잘 하고 꾸준히 버티고 있으면 특별한 사정이 아닌 이상 병세는 나아지기 마련이고 상황은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체의 회복력이라는 게 그렇다는 얘기죠.


그러나 암은 다릅니다. 종양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내비두면 악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인체의 저항력, 회복력이 암세포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그게 병이라고 인식 자체를 못하니까요.


저는 지금 종양을 상대로는 어떤 특별한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차차 나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때문에 저는 굉장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러다가 어느 순간 종양이 갑자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면 저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천천히 성장한다면 천천히 당하는 것이고요. 그런 상황 자체가 주는 공포심은 상당합니다.


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맞서게 되는 고통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통증이 주는 고통이고,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주는 고통입니다.


통증이야 진통제로 어지간히 다스린다 치고, 미래에 대한 공포는 어찌할까요? 참는 수밖에 없죠. 이 부분에서는 가족들의 도움이 가장 큽니다. 그중에서도 마눌님의 존재가 주는 힘이 가장 큽니다. 오늘 제가 그나마 멀쩡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러분께 제 현황과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정말로 감사한 일이죠. 제게 주어진 이 여유,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힘듭니다. 아프고 무섭고 힘드는데, 그래도 버티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강추위까지 덮치고 미세먼지까지 괴롭히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짧게 짧게 책이라도 보고 오래된 고전영화를 보고 고전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밤중에 잠이라도 깨어 앉아 있다 보면 온갖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암울하고 슬픈 생각은 가급적 접어버리려고 노력하고 밝고 희망찬 생각들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하긴 하지만 그런 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닙니다. 통증이라도 또 올라오면 진통제를 먹으면서도 이 통증이 왜 올라오는 걸까, 어느 부위에 종양이 또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암울한 생각이 함께 따라옵니다.


통증을 공포를 부르고 공포는 다시 고통을 부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고 버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죠.


딱 하나,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살다 사라져 갔으며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는 뭔가 의미 있는 존재로 살다 갔다는 이야기 하나만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힘드는군요.  


내일 병원에 가서는 뭔가 좀 희망을 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버티면서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끝까지 버티는 유일한 길이겠지요. 여러분들의 작은 성원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면 자꾸 접속해서 여러분들께서 달아주신 댓글들을 읽어 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거기서 힘을 얻게 되죠.


정말로 감사합니다.

추신 : 손편지 프로젝트, “나에게 쓰는 편지”에 대한 글도 같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 프로젝트의 실무적인 부분은 가족들이 도와주고 있으므로 저는 큰 방향만 설명드려도 되는데 그것도 힘이 드네요. 어떻게 해서든 유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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