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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 Mar 26. 2021

기사를 쓰다보면 글 쓰는 방법을 잊는다.

세상 이야기를 쓰다가 막상 나를 마주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자라고 하면 왠지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을 것만 같다. 늘 글에 집중하고, 글쓰기에 능한 사람일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막상 기지가 되고 보니, 내가 쓰는 글은 글이 아닌 것만 같다. 이게 글인지 보고서인지, 내가 혹 앵무새처럼 보도자료에 있는 내용들을 정리해 읊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때면 퍽 무기력해진다.


이러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무미건조한 글을 쓰게 되었을까. 나의 삶이 무기력해졌기 때문일까.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취재원의 목소리를 담아도, 애써 다른 데는 없는 수치와 리서치 자료들을 찾아 넣어도 영... 글이 재미가 없다. 그저 그런 헤드라인, 그저 그런 분석.


매일매일 지면은 채워져야하고, 내 할당의 메모는 올려야하고 그러다보면 일단 오늘 하루를 버티고 보자 하며 또 다시 글을 써내려가지만 결국 하루의 끝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내가 써내려간 기사 외에는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나의 시야는 좁아졌고, 나의 상상력은 사라졌고,  나만의 창작을 위한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다.


'역시 철학이나 문학, 예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해' 라며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의 황금기는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매일 있는 야자시간, 어두운 자습실에서 오직 노란빛 스탠드등만 켜져있는 나의 책상.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영감을 찾으려면 늘 같은 시간에 영감을 만나러 가면 된다고 했는데 나에겐 야간 자습시간이 그랬다. 힘든 하루를 겪었더라도 고요하게 나와 나의 내면만이 마주하는 그 시간, 나는 나의 많은 감정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글로 써내려갈 수 있었다.


마치 화장실 한칸에 숨어들어간 것처럼 은밀하게 내가 나와 대화할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 나의 숨구멍이었다.


물론 공부도 했지만 나는 꽤 많은 시간을 일기를 적는데 보냈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험생의 하루는 하루종일 공부할 일정으로 안그래도 빡빡하니까. 공부가 좀 안된다 싶으면 열심히 일기를 써내려갔고 그러다보면 아이디어가, 글감이, 새로운 표현이, 그리고 꿈이 떠올랐다.


참 그 어린시절엔 마음이 섬세하기도했다. 사소한 것들에 아주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프고 또 설레기도 하고 절망했다가 또 기뻤다가... 지금은 그 모든 감정들이 한층 덜하다. 내 스스로가 그런 감정들을 강하게 느끼기를 거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을 느끼는 것마저 귀찮으니까.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니까. 또 감상에 젖어 내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했다가는 하루하루 닥치는 육아와 일을 버텨낼 수 없으니까.


예전엔 가끔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아주 자주 그 시절이 그립다.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를 갈고 닦았던 그 시절.


수능이라는 문턱 앞에 있던 그 순간은 마치 지구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것과 같아서 매일매일이 소중했고 매일매일이 기억할 만한 날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길을 향해 하염없이 걸으며 이 길이 맞는건지, 아니라면 내가 돌아갈 순 있는건지, 그대로 가는게 더 목적지에 가까울지 돌아가는 것이 가까울지 확실한게 아무것도 없는채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내일도 나는 글을, 아니 기사를 쓸 것이다.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주식시장은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그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적어내려가면서 나는 또 생각할 것이다.


언제쯤 다시 내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언제쯤 어떤 목적 없이 정말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도 울릴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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