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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 Oct 04. 2022

제발 나 좀 퇴사시켜주라

내 발로 그만둘 수 없었던 첫 회사 퇴사기

첫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20대의 청춘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 인생에서의 나는 없고, 회사에서의 나만 있었다. 맡을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노력이 인정받고 성장하는 기분이 들 때면 내 인생의 승리자가 된 것 같았다.


회사 안에 있을 때건 회사 밖에 있을 때건 회사 동료들과 하루 종일 연락하고, 노는 것이 즐거웠다. 인스타그램에 프로젝트 광고모델이었던 연예인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부럽다는 친구들의 댓글이 달리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 청춘 값에 한참 못 미쳤던 그 월급도, 간헐적으로 지급되던 회사 복지도 '이만하면 감사하지.'란 생각을 가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감사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이겨낼 수 있었을 만큼 현실은 고통스러웠다. 인정받기 위한 과정에서 지독히도 나를 괴롭히던 상사에게 듣는 온갖 피드백에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싫은 내색도 못한 채 함께 긴 시간을 일했다. 눈물을 꾹 참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 숨어 들어가 쏟아내기 일쑤였다. 견디기 힘든 날이면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갔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회사 건물만 빙빙 돌았다.


동료들과의 시간은 회사 욕과 상사 욕을 해대기 바빴다. 퇴근 후에는 매일같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해 또 다음 날 숙취와 함께 일을 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모여 불평들을 쏟아냈다. 이 현실을 참고 다닌 이유는 돈 때문도 아니었다. 1년, 2년, 3년... 해가 거듭돼도 월급은 눈에 띄게 오를 생각을 안 하고 매년 회사는 최고 매출을 달성하는데 내 손에 쥐어지는 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회사를 향해 불만을 낼 수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시 묵묵히 출근을 하는 것뿐이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제발 그 회사 좀 나와." 그렇지만 회사를 나가면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내 노력이 사라질까 막연한 두려움. 혹은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다시 어딘가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기 있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 미치도록 그만두고 싶었으나 나 스스로는 나갈 용기가 안나 차라리 회사가 나를 잘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뎠다. 회사에서의 나만 있었고 내 인생에서의 나는 없었던 대가였다.


그러나 퇴사의 계기는 의외로 다른 곳에서 터졌다.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을 가장 큰 직장 생활의 동기 부여로 삼았었는데, 회사 사업이 잘되고 조직이 커지며 팀원들이 늘어나자 내 업무는 조금씩 충원되는 팀원들에게 나눠졌고 내 자리가 사라져 감을 느꼈다. 일이 너무 많아 힘들던 와중에 발생한 이 상황에 몸은 편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회사 속에서의 나는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느껴지는 순간 부끄럽지만 마음속으로 이상한 열등감 내지는 질투심이 생겼다.


바로 그 시점에 급하게 이직할 회사를 구해서 호기롭게 첫 회사를 퇴사했다. 난 더 잘되리라. 너희와는 달라. 나를 더 인정해주는 곳으로 갈 거야. 생각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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