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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 Apr 04. 2023

5년은 버텨도 3개월은 못 버티는 이유

대기업, 외국계, 스타트업 경험기


나에게는 주니어 때부터 꿈이 있었다. 다양한 산업을 경험하여 어느 분야를 맡더라도 잘 해내는 마케터가 되는 것. 그래서 나는 꽤 다양한 (남들이 들으면 의아할) 산업을 거쳐왔고 어쩌다 보니 대기업, 외국계, 스타트업 모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장점도 단점도 뚜렷한 세 개의 기업 형태를 누군가의 고민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가 경험한 것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나의 첫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였다. 소위 외국계라 하면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갖는데 물론 업무적으로 영어를 자주 사용하긴 하지만 영어가 부족하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영어 사용은 주로 회화(본사 방문 대응, 컨퍼런스 콜, 프리젠팅)와 이메일(본사 커뮤니케이션) 위주였는데, 나는 지극히 대한민국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영어권에 유학하고 온 다른 동료들 보다는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업무적으로 불편을 겪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중요한 프리젠팅을 앞두고는 간혹 회화학원을 다니며 보완하기는 했지만 평상시 업무는 평균적인 영어 실력으로 커버가능하니 너무 겁먹지 말자. (오히려 잘하면 할수록 좀 더 본사 응대 업무를 떠맡게 되더라.)


외국계 마케팅의 경우 글로벌 브랜드아이덴티티 유지 관점에서 본사의 일정 부분 관여가 있을 수 있다. 때론 원치 않는 글로벌 마케팅을 함께 전개해야 할 때도 있고 우리가 하고 싶은 로컬 활동을 반려할 때도 있다. 내가 있었던 브랜드는 그래도 조금 유연한 편이었어서 국가 특수성을 고려하여 우리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 주는 편이었으나, 동종업계 타 외국계의 경우 본사 가이드가 엄격하여 제약이 많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외국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입사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10% 만이 '진짜' 외국계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고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대부분은 외국 브랜드를 한국 기업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꽤 한국화가 된다.




두 번째 회사는 선발 스타트업 회사였다. 그때 당시 수평적인 문화, 자율성, 창의성 등을 표제로 IT 기업 붐이 일어났고, 개발자들 중심으로 고액 연봉과 억대의 사이닝보너스를 주는 등 경쟁적인 인재 영입이 이어져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게 대세로 자리 잡았다. 나 또한 첫 회사의 권태로움이 지속될 때쯤 내가 자율성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고 마음먹고 스타트업 선발대 기업이었던 곳들 중 한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엔 좋을 수도 있으나 다른 기업을 한 차례 경험하고 간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먼저 자율적인 만큼 체계가 없었다. 회사가 오래되지 않다 보니 일이 처리되는 프로세스가 내재화된 게 없었고, 앞선 사례나 기반이 없다 보니 뚜렷한 방향성을 수립하고 전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연차가 오래되지 않다 보니 의견 개진에 자율성은 있지만 노하우를 갖고 명확하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리더가 없어서 일이 올바르게 나아가는 느낌이 없었다. 이 부분이 나한테는 스타트업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꽤 치명적인 부분이었는데, 선장이 없이 선원들끼리 산을 올라가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꽤 방황을 하다 퇴사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맞지 않았을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잘 적응하며 다니고 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주니어들에게, 그리고 회사를 함께 키워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현재는 글로벌 대기업에 재직 중이다. 대기업은 앞선 회사들보다 확실히 체계적이고, 시스템화가 잘 되어있으며 이에 따라 모든 것이 규제와 절차 속에서 움직인다. 위계 구조가 명확하고 결정권자가 많기 때문에 의사결정과 업무 처리가 다소 느리다. 소위 대기업에 속하면 나는 회사라는 톱니바퀴의 부속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데 실제로 그렇다. 나는 지금 첫 회사인 외국계 기업에서 하던 업무 범위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범위의 일을 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분업화가 잘 되어 있고 전문성을 갖추기 좋지만 안 좋게 말하면 팀 간 업무 공유가 안 되고 전체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어렵다. 


또 사람들이 경쟁적이지 않다. 기업문화의 특수성도 한몫하겠지만 오히려 외국계, 스타트업보다 대기업에서 동료들이 경쟁적이지 않고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받는다. 아무래도 여러 유관부서가 협업해야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하고 개인의 성과가 아닌 우리의 성과가 중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꽤 친화적인 조직 문화가 정착된 것 같다. 그간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치이고 상처받은 나로서는 이토록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고 내 적응을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는 점이 참 좋았다. 


그러나 회사 속에서 내가 발전한다는 느낌은 앞선 두 회사 구조보다는 덜하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수많은 직원들 중 하나일 뿐이며 나의 영향력이 회사에 미치는 수준이 미미하기 때문에 성취감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세 개의 회사 중 어느 하나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경험이 없다. 첫 번째 외국계에서는 정말 많은 업무범위와 경쟁적인 상황 속에서 고생은 많이 했지만 주니어로서는 단기간에 겪기 어려운 많은 경험을 했고, 결론적으로 내가 전방위적인 마케터가 되기 위한 초석이 되었으며 내가 앞으로 나아갈 커리어 방향을 넓혀 주었다. 두 번째 스타트업은 IT 기업의 생태계를 알 수 있었고, 인하우스에 내재화된 마케터로서의 역량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내가 어떤 조직에 핏한 사람인지 느끼게 해 줬다. 대기업은 큰 조직의 생태계를 알게 해 주면서 내가 새로운 분야로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되어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그 속에서 내가 가져야 할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첫 회사에서 5년을 다녔지만 두 번째 회사는 3개월 만에 나왔다. 나와 회사와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여러 환경과 조직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잘 맞는 조직을 찾아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부터 나에게 딱 맞는 조직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도전해 보고 경험해 보면서 나에게 더 적합한 곳을 찾아 나서는 게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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