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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 Oct 04. 2022

제가 퇴사를 당했다고요?

내 발로 그만둘 수 없었던 두 번째 회사 퇴사기

"너 후회할 거야."


첫 회사를 퇴사한다고 했을 때, 내가 있던 부서의 헤드가 한 말이었다. 3년 넘게 조직의 초창기부터 나의 직장생활 성장기를 옆에서 봐왔던 그분께는 나도 일종의 '애증'이 있었는데, 내 퇴사 선포(?)는 그분에게도 꽤나 충격이었는지 처음엔 배신감을 느끼다, 다음엔 말리다, 마지막에는 저주 아닌 저주를 했다. 그 저주가 너무나 못나 보여서 더 의연하고 호기롭게 나왔다. 내가 잘 돼서 두고 보자.


두 번째 회사는 첫 회사와 전혀 다른 IT서비스 산업군이었다. 내가 있던 산업군은 아니지만 한창 떠오르는 플랫폼 서비스 기업인 데다가 내가 했던 직무 그대로 살려가니 문제 될 건 없다고 자신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 적당하게 상승한 연봉에 다양해진 복지까지. 모든 부분에서 나는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회사를 3개월 만에 '퇴사당했다.'


입사 3개월이 되던 해에 팀장은 나를 불러서 내가 본인들이 하는 업무 스타일과 다르다고 하며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말이 참 자존심이 상했던 건 나 또한 그 회사를 다니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떠오르는 플랫폼 서비스 기업인지라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를 표방했지만 이는 실질적으로는 체계가 없음을 뜻했다. 모든 업무엔 '답'이 없었다. 가장 나를 괴롭게 했던 사수의 피드백은 'ㅇㅇ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였다. 하지만 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프로젝트 안을 준비해서 가져가면 뚜렷한 피드백은 주지 않으며 이 방향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생각하는 방향성을 알려달라.'는 요구엔 '왜 그 있잖아요. 그 뭐냐 그.. 암튼 그런 게 있어요. ㅇㅇ님이 좀 더 생각해 보세요.' 나중에서야 이 말은 '하고 싶은 대로 절대로 하지 마세요.'임을 알았다.


또 다른 하나는, 신생 기업이라 해당 산업과 직무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나온 노하우를 가진 상사가 없이 나와 비슷하거나 낮은 경력의 팀원들로 팀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성장'을 직장생활의 가장 큰 성취로 삼는 나에게는 못 견디는 일이었다. 방향성을 설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대학 동아리 회원들끼리 다음 학기 동아리의 운영 플랜을 논의하는 것처럼 이 조직이 기업을 운영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이유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텃세가 있었다. 나름대로 내 분야에서 업계 사람들이 다 알법한 프로젝트 성공 경험을 갖고 온 나에게 '네 방식은 잘못됐어', '여기는 다른 곳이야', '적응하려면 이 방식대로 해야 해'라며 내 경험을 무시하고는 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일종의 직장 내 가스라이팅이었다. 사수와의 관계는 갈수록 틀어져만 갔다.


그즈음에 강남에서 20만 원짜리 도수치료를 주 2회씩 받았다. 회사에 가면 어깨부터 등까지 모든 근육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하는데, 집에서 잠을 잘 때까지 이어져 잠에 들기 힘든 상태까지 이어졌다. 그때 나는 30대를 바라보는 시점이었는데, 문득, 이대로 내 20대가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몇 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심사숙고해서 이직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니. 내 노력은 어떻게 되고 내 청춘은 누가 보상해주지?


그즈음에 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퇴사를 결정되고 정말 귀신같이 두 달 내내 지속되던 통증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 퇴사시켜 줘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첫 회사처럼 온갖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떠안은 채로 죽지 못해 다니고 있었을 테니까. 다음 스텝이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쉬고만 싶었다. 퇴사당한 나는 웃으면서 회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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