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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Jun 06. 2022

아이가 리더가 되기를 바라시나요?(3)

꿈이 없는 어른, 꿈을 꿀 수 없는 어른.

지난주 아이가 학교 수업시간에 작성한 미래일기를 가져왔다. 수학 시간에 창의융합 활동 중 작성한 곱하기가 들어간 수학 미래일기 일부에는 아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때는 5256년, 요즘 구조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 오늘은 아주 바쁘게 뛰어다녔다. 내가 36번 구출을 할 때마다 날씨가 바뀌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몇 번을 구출했는지 잊었다.
그래서 날씨가 바뀐 횟수를 기억했다. 모두 8번이었다. 그래서 36x8=288을 계산하고 뿌듯이 봤다. 최고 기록이 27x7=189번이었는데, 288-189=99번이었다.
최고 기록보다 99번 더 하다니 너무 기쁘다.


글을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와, 멋지다. 네가 생각하는 미래의 너의 모습이구나. 어떻게 하면 하루에 288번을 구조할 수 있는 거야?”

“머릿속의 레이다를 켜고, 구조의 상황이 생기면 센싱을 해서, 팍팍 순간이동을 하는데 그러다 고양이가 위험하면, 고양이도 구조하고…”  아이가 말하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다 보니, 수년 전 봤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때 영화를 보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천재성과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에 듣고 한번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야~ 우리 아들 작가 재능이 있네, 나중에 인터스텔라 영화 작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엄마가 나중에 그 영화 보여주께.”


다소 허무맹랑하지만 재밌어 죽는다는 얼굴로 공학적 표현을 넣어 구체적인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나 역시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법을 부리고 싶어, 여태껏 본 애니메이션 속의 마법 주인공이란 주인공은 다 끌어 붙여 합체된 그의 꿈은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사그라든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처음에 아이의 꿈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동물이 되고 싶다는 건가, 동물과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지?'라는 염려에서 출발하여, 학년이 올라가면서 구체적인 현실 직업을 말하는 친구들 틈에서 여전히 엉뚱한 상상을 본인의 꿈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며, '으... 제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법을 부리고 싶은 이유가 뭐야?"

"마법을 부리고 하늘을 날고 싶어. 그럼 사람들을 더 빨리 도울 수 있잖아."


아이가 말하는 도움은 'Rescue = 구출'을 의미한다. 6살 무렵부터 사용한 이 단어를 듣고 그때 나는 히어로 만화의 영향이겠거니, 자라면 자연히 사라지겠거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4.5년이 흘렀건만, rescue를 향한 아이의 순수성은 한 방향으로 더욱 강력한 빛을 발할 뿐이었다.




괜찮게 공부했고, 이십 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며, 한 우물만 파왔고 나름의 성취를 해왔지만 기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란 사람은 본능적 지식 탐구 재능의 부재로, 항상 의미와 효율이 보이고 결과가 그려져야 움직일 수 있었다. 배워야 할 목적이 있을 때 지식을 섭취했고, 최상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 깊게 연구했다. 일이 완성되면 나는 곧 그 지식들과 이별하고,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었고 일의 이유였다. 나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나에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은 위험한 일이고, 불확실하며 그게 무엇이 됐든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난 꿈꾸지 못했고, 꿈꾸는 법을 몰랐다.


 눈에 보이는 잘함이 내가 가진 무기였을 뿐이었다. 매우 좁고, 한 곳만 공략할 수 있는 협소한 무기이자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는 무기가 아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무기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 협소한 길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고, '아니야, 내가 하는 게 맞는 거야, 난 일을 잘하잖아.'라며 시야 옆에서 펼쳐지는 다른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쉼 없이 공부하고, 어른이 되어 쉼 없이 일해왔지만 난 억울하게도 오직 내 자리에 있는 것만 알고 있는 게으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이라고 모를까?

친구들이 하나같이 어른들이 보편적으로 멋지다 하는 직업들을 나의 꿈이라고 말할 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상동물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그 아이는 모르지 않는다.


"어떤 친구는 미래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그러더라. OO 이는 수의사가 꿈이라고 했지." 공개수업 시간, 부모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 각자 자신의 꿈을 발표했다.


 "사람은 다 달라." 아이가 말했다.

 "그래 다르지" 는 거기에 뭔가 더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동의할 밖에...


"나는 OOO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못 알아듣는, 그의 꿈을 친구들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발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책 모모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긴이 말 중에서-


시간이 삶이란 말은 마치 겉으로는 단순한 집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비밀의 문과 같이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어. 엄마의 기대 속에 살았지. 지금은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 정확하게는 상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있지. 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


나의 지나온 시간 동안 내가 겪은 삶은 누구의 삶이었을까?

나는 열 살에 무엇을 꿈꾸었는가, 스물에 꿈꾼 건 무엇이었나, 서른에 어떤 엉뚱하고도 자유로운 내가 만든 나만의 꿈이 있었던가...


매일이 재밌고, 상상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기대를 가득 안은  아이의 시간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을 쌓아가며 미래를 걱정하는 나의 시간은 정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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