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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Mistakes Feb 21. 2020

이충걸 효과

자발적 문체반정의 종료


#1
이충걸의 에세이를 읽었다. 매월 GQ의 ‘에디터스 레터’ 코너에 실렸던 그의 글은 충격이었다. 독자에게 공개되는 지면에,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걸고 발표된 그의 글은 지극히 사적이었다. 글로벌 라이선스 매거진의 월급쟁이 편집장이 사유화(私有化)한 권두언은 자연스레 GQ코리아의 전략이자, 간판, 스타일이 되었(을 것 같)다. 사적인 취향, 관점, 태도가 전방위적인 소재에 자유롭게 반응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불꽃을 만들어 냈다. 와, 부럽다.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가 자본, 시스템을 통제(lead)할 수도 있구나.  


#2
나의 공적인 글쓰기는 내 지문과 색깔을 모두 지운 상태를 디폴트, 이데아로 간주하며 진행되어왔다. 억지로 스타일을 탈색한 내용이었으니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재미가 없었겠지. 내가 어쩔 수 없다고 타협했던 공적인 글쓰기의 세계는 true or false의 세계였고 이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은 ‘무미건조’라 믿었다. 여기에 똑똑한 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이 강박은 자연스레 부자연스러움과 과장을 동반했다. 그래서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혹은 않았다.


#3
20 년이 훌쩍 넘은 이 오래된 착각에서 하차한다. 이 마침표 찍기에 도움을 준 이충걸의 책 제목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이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표현하기로 했다. 좀 용감해지자. 문체반정의 시대를 살아낸 박지원도 있는데. (마침 봉준호와 마틴 스콜세지도 내 결심을 멀리서 지지해 주었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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