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Apr 19. 2020

삶에는 행복 그 이상의 것이 있다.

'행복해지자' 한 마디의 덫에 대해.

Rooftopping with Camilla :)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취업과 관련된 일들만 아니라면, 홍콩에서의 삶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들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홍콩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아파하고, 이겨내고, 성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넌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 라고 묻는다면 아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11월은 나에게 힘든 한 달이었다. 홍콩에 와서 가장 힘들었고, 쓰라렸고, 외롭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인스타로 보면 항상 행복해보이던데?"

그 순간 든 생각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생활은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상의 아주 단편만을 보여준다는 이런 종류의 생각보다는
뒷통수를 한 대 때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아마 내 친구가 그렇게 말한 데는 물론 행복에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의 의미 정도로 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문맥상. 그런데 아무 죄 없는 행복이라는 말이 그렇게 거슬린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1) 행복한 삶은 고통이 없는 삶이어야만 하는가? 2) 잘 살고 있다 = 행복하다 3) 행복이 삶의 이유인가? 4)행복해지기 위해 살아야하는가?
라는 의문이 그 짧은 사이에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홍콩에 와서 정말로 좋은 경험들을 많이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래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서도 난 '행복하다'라는 말을 쓰는 대신, 좋은 상태를 대신 하는 다른 말들을 찾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좋은 요소들만 다 모아놓은 컴팩트한 단어, '행복하다', 를 두고 왜 굳이 다른 말을 찾냐고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행복이라는 좋은 단어를 보면 행복의 뭉글뭉글한 느낌보다는 약간은 불편한 느낌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Lantau 16K trail run. 좋은 기록으로 완주! 나 스스로 정말 잘해줬다고 마구 칭찬해주고 싶었던 날 ♥


생각해보면 난 항상 기쁘고, 걱정 없고, 즐겁고, 뭉글뭉글하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왜 꼭 행복이라고 불러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렇다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기쁨이 지속되는 상태일까?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원하냐고 물어보면 행복한 삶을 원한다고 할까? 그행복한 삶은 항상 기쁘고 기분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그런 삶일까? 그런데 현실에서는 고통이 없는 삶은 없는데.? 그렇다면 뭔가 우리가 행복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행복이라는 개념은 허상인 것인가?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는 행복하다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삶을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나눈다는 것도 약간은 불공평하기도 하고, 말이 안되기도 했다. 행복한 거 아니면 행복하지 않은거? 그리고 우리 사회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사실 살면서 자연스럽게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기형적인 사고를 은연중에 심어주는 듯했다. 좀 불공평한거 아닌가? 살면서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는 것은  만약 그런 삶을 행복하지 않은 삶이라고 재단한 다음, 행복을 삶의 가장 완벽한 모습인양 몰아가는 사회에 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많아지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한 삶보다 더 지속가능한 삶의 형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There's more to life than being happy'라는 제목의 TED 영상을 보게 되었다. 뭔가 나의 복잡한 생각을 좀 명쾌하게 정리해줄 것 같은 흥미로운 제목에 끌려 보게 되었다.


"Is there more to life than being happy?
And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being happy and having meaning in life?"


https://www.ted.com/talks/emily_esfahani_smith_there_s_more_to_life_than_being_happy?utm_campaign=tedspread--b&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그래서 결론은 홍콩에 와서 여러 일들을 겪으며 (한국에서는 없던 여유 덕분에) 건강한 삶, 지속가능한 삶, 가끔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통에도 연연해하지 않은 그런 삶, 일시적인 기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었고, 가끔 우울하고 쳐져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다. Just embraced it. 그 대신 더 resilient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약간 다른 각도에서 스스로에게 스토리텔링하기 시작했다. (강연에서 말한 meaningful life를 이루는 네번째 pillar : storytelling과 연결되는 부분) 그래서 이 사회가 개인에게 은연중에 주입하고 있는 행복의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대신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거기서 내가 어떤 점들을 배울 수 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최악으로 떨어지는지, 어떤 자극을 받으면 기분이 이만큼 안 좋아지는지 한 번 실험해 볼 수 있었다. 인생을 굳이 그런 실험정신으로 살아야겠냐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스스로가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아는 것은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행복하지 않은 생활'도 그저 받아들여야한다. 행복하지 않다고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확실해지고, 행복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된 이후로 좀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느낌은 단순히 행복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했다.


@Mongkok. 트레일러닝이 끝난 날, ayumi와valentin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상해에서 알게 되어 홍콩에서 다시 만나게 된 ayumi와의 인연은 참 신기하다.


그리고 지옥 같은 11월이 지나고, 모든 학기가 끝난 지금.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관찰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9월보다도 더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 더 건강한, 흥미로운, 매력적인,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정말 좋은 느낌을 느낀다. 11월 정말 많이 힘들었다. 갑자기 몰아치는 학교 과제에, 과제 뿐만 아니라 정말 쏟아지는 팀플 발표에(표면적인 이유. 힘든 이유로 둘러대기 쉬운 이유들), 그 밑에 깊게 깔린 감정 소모적인 문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마음은 이미 그 사람에게 feel attached 되어 내 감정을 내 스스로가 다스리지 못했던 것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우울함. 그냥 잊어버리고 끊어버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왜 나는 그렇게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지 고민하며 느낀 나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 스트레스는 이만큼인데, 거기에다 더해진 문화차이. 가끔은 완전히 다른 문화 때문에 small talk이 아니라 속에 있는 깊은 생각을 말하면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나의 스타일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황까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small talk으로 가득하기도 했던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대화에 끼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힘들어서 어쩔 때는 영어가 속이 메쓰거울 정도로 거부감 느껴지 때도 있었다. 그게 11월이었다. 그렇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로 우울해지는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고, 좀 더 객관적으로 나쁜 상황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에 대한 답도 좀 더 현명하게 구할 수 있었다.


@Mid-levels


그렇게 모든 소용돌이가 끝나고 그 동안 힘들어 했던 것들에 대해 명확해질 수 있었다.
이런 소용돌이들에 이제는 좀 더 태연해질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혹은 나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빌 때 우리는

"행복하자" 라는 말을 건네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하자라는 말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하지 않아도 좋은 삶을   있다는 믿음을 다시   다져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