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림유니언 디자인본부의 본부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민호.
현재 제가 위치한 자리입니다. 2014년 9월 15일 더크림유니언에 과장 직급과 팀장의 직책으로 입사했습니다. 그 후 두 차례 승진을 하며 2015년 디자인 본부의 수장을 맡았고 이제 막 3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입사 후 불과 1년.
생각보다 빨랐고 정신 차리고 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 CD)였습니다.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짧게나마 지난 이력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디자이너에서 디렉터로 변화하면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품었던 궁금증들이 지금의 디자이너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과정에서 겪은 고민들과 생각들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강연을 나가 학생분들이나 디자이너분들께 이런 질문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어떻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나요?” 여기에 대한 답변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실망하시겠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입니다.
어쩌면 이른 나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금의 모든 것이 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닌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움을 받겠지요. 그 따스한 시선과 배려에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디렉터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에는 기쁨과 설렘도 있었지만 두려움과 망설임도 함께 공존했습니다. 디자이너의 꽃이자 끝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책임감도 역할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언젠가 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네이버에 검색해서 보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나오더군요. 맞는 말 같습니다. 맥락에서 보자면 전체의 흐름을 보고 균형을 맞추며 판단하고 결정짓는 것이니까요.
디렉터 자리에서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요즘 말로 현타('욕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무념무상의 시간'을 일컫는 신조어인 '현자 타임', '현실 자각 타임' 등의 준말)가 왔던 일은 제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안 프로젝트의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최대한 밤샘 작업을 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지만 제안 프로젝트의 경우 개인의 욕심 때문인지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습관이 하나 있다면 그날 디자인했던 시안들을 모두 출력해서 집으로 가져갑니다. 지금은 출력보다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에 담아 가는 편입니다. 퇴근 후에도 계속해서 제가 했던 디자인이 무의식적에도 눈에 걸릴 수 있게 바라보고자 함이죠. 조형적으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있는지 UX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등등 계속해서 살펴봅니다. 운전을 할 때도 출근 준비를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그냥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게끔 하는 거죠.
혼자 디자인을 하면 이런 총체적인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완성된 결과로 도출이 됩니다. 완성된 디자인이 다소 아쉽더라도 일단은 할 만큼 했다며 자위할 때가 많죠. 여기까지는 제가 디자이너 역할이자 혼자 디자인을 진행할 때의 흐름입니다.
디렉터의 입장에서는 조금 달라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디자이너가 초기 콘셉트부터 진행된 디자인을 제게 가져옵니다. 전 그것을 보고 판단하죠. 전체 맥락의 흐름은 이해하고 있지만 제가 혼자 그렸던 디자인이 아니기에 다른 디자이너의 의도와 방향성을 꿰뚫어 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누군가 몇 날 며칠 고민하고 생각한 디자인을 빠르면 십여분, 길더라도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누가 디렉터를 디자이너의 꽃이라 했던가
여기서 아까 말했던 어려움이 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도 메아리처럼 맴도는 고민들이 있어요. 과연 내가 옳은 판단을 했던 걸까? 혹여 크게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자칫 내가 세상의 빛을 못 보게끔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들입니다. 제가 디자이너였을 때는 그래도 내 팀장이 내 위의 디렉터분이 계셨고 의지하며 동시에 배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누군가에게 디렉션을 받고 힘들 때 위로받을 사수가 없는 겁니다. 외롭기까지 하더라고요.
양날의 검을 쥔 것 같았습니다. 디자인을 제 생각대로 흐름을 만들고 결정할 수는 있지만, 더 나은 것을 가르쳐줄 사수가 사라지는 겁니다. 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이너의 꽃이라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굳이 꽃이라고 명명한다면 한껏 가시 돋친 장미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이 선 가시에 찔릴까 잔뜩 힘이 들어가 꽉 쥐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애매하게 쥘 수도 없는 것이죠. 적당한 힘과 간격을 아슬하게 유지하며 그 균형을 유지해야 비로소 고객사와 대중들에게 아름다운 장미꽃 한 송이 겨우 건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와 디렉터의 차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insight 즉, 통찰력은 디렉터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지만, 특히나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디자이너와 디렉터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디자인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직책은 아닌 것 같아요. 디렉터에는 크게 두 가지 성향이 있다고 봅니다. 실무적인 디자인 능력이 뛰어나 선행작업을 주도하며 팀원들을 리드해나가는 사람, 폭넓은 사고와 견문으로 팀원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여 그들이 주도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이 두 가지의 장점들을 고루 갖추며 리드해나가는 사람인데 이런 이상을 실천하는 선배님들을 뵐 때마다 항상 멋지고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저를 굳이 앞의 분류 속에서 선택해 넣자면 전자 쪽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디자인을 좋아하고 직접 그려내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다른 누군가에게 절 소개할 때 움찔거릴 때가 아직도 종종 있습니다. 디자이너 신민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민호입니다. 이 두 가지 이름에서요.
문맥을 이어주는 역할, 디렉터
디자이너였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보고 그릴 줄은 알았지만 그림을 읽는 방법은 몰랐던 겁니다. 디자인 콘셉트는 잡았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 구조물이었다는 것을 디렉터가 되어 발견했습니다. 종종 즐겨보던 알쓸 신잡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었는데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반대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테지만 축약해서 전달하자면 반대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단편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도록 쓴 작품인데 교과서에는 극히 일부분 지문처럼 한두 단락만 실린다는 겁니다. 그리고 문제를 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서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 현상은?” 이런 식인 거죠. 조각난 내용 속에서 단순히 답을 찾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말을 합니다. 독자는 스스로 느껴지는 감상을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라기보다는 제가 디자이너였을 때가 더 정확하겠네요. 프로젝트의 주어진 과제와 문장 안에서만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금융업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데 요즘의 UX트렌드, 컬러, 그리드와 같은 표면적인 꾸밈이었던 거죠. 그나마 더 생각했다면 금융업의 냄새가 날 수 있게끔 정도입니다.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 이 항목에만 몰두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디자인 역시 드러나지 않은 처음과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이고 읽으려 하지 않은 그림입니다. 디렉터는 읽히지 않았던 그림을 드러나게 해 주고 읽을 수 있게 문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고객사의 생각과 의도, 프로젝트의 배경, 소비하는 사용자, 심지어 TFT 멤버의 컨디션까지 총체적인 경험을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죠. 인문학적인 시선과 사고가 더없이 중요해집니다. “똑같은 작품을 천명이 읽어도 감상이 천 개가 나와야 하듯이” 정해진 표면적인 답보다는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맥락’이라는 것이 자리 잡습니다. 이것이 제가 디자이너에서 디렉터로 변화하면서 경험하고 깨우쳤던 시선이었습니다.
직책의 높고 낮음이 아닌, 균형과 존중
모든 시작은 처음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과거에 이미 경험이 있어서 어떤 직책과 자리가 익숙하고 편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스스로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쌓아 올리고 있었기에 처음의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지속적이고 꾸준함의 힘이 문제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해결점을 찾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천천히 적응해 나가는 것이죠.
디자이너와 디렉터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놓았지만 결국 이 둘이 지향하는 바는 같다고 여겨집니다. 직책의 높고 낮음이 아닌 우리가 바라보는 그곳이 같았음 합니다. 균형과 존중이 있었으면 해요. 속된 말로 아저씨, 아줌마라는 단어를 우리도 미처 자각하지 못할 만큼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예의 없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사용합니다. 잘못된 것이죠. 그럼에도 실제로 그런 교양 없는 행동들을 목격하거나 내가 그 상황을 겪으면 짜증 나는 아저씨이고 짜증 나는 아줌마로 치부해버립니다. 아마 이런 아저씨 아줌마분들은 세상을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편하게 행동하며 나오는 그 익숙함이 되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거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도 이제 아저씨로 불릴 나이입니다. 기왕이면 담백하게 아저씨, 욕심을 내자면 멋진 아저씨가 되고 싶어요. 그러자면 내가 살아왔던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 내가 행동하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인 양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에서 디렉터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 곧 익숙해지고 내가 이미 해봤던 것이기에 디자인을 정해진 답처럼 내놓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해봅니다.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단순하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디자인의 가치는 ‘내’가 아닌 타인의 배려에서 나오는 가치입니다. 우리의 디자인을 소비하는 사용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셨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