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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디자이너


‘그냥’이라는 두 글자가 묘합니다.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란 책에서도 이 그냥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전 제 관점에서의 그냥이라는 말을 써본 적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그냥’이라는 말은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사용되기도 하고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네이버 국어사전)라고 합니다. 

디자이너에게 붙는 수식어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지금 제가 디자인하는 이 ‘웹’이라는 분야에는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존재합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발전과 그만큼의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웹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이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전히 제가 하고 있는 이 직업을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웹디자이너로’ 시작이 되었다가 플래시가 등장하니 플래시 디자이너가 생겼습니다. 또 모션의 발달로 모션 디자이너가 생기고 아이폰이 등장하니 앱디자이너와 모바일 웹 디자이너의 구분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UI, UX, BX, CX 등 너무 많은 환경의 변화와 기술의 등장들로 우리들 ‘웹디자이너’ 였던 사람들은 때에 따라 그 수식어에 어울리는 옷을 갈아입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디자이너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은 디자이너라 칭하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 사물을 보다 더 조형적으로서 아름답게 보일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일 테지만 이것은 단편적인 부분만의 디자인을 생각할 때입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지는 못합니다.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죠. 표현해야 하는 대상에 대한 본질과 맥락을 파악하고 가치에 대한 내용이 담길 때 비로소 잘 전달 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디자인은 UX 가 담고 있는 이론적 개념과 이미 더욱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던 고전 예술과도 같은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할 때가 있습니다.

고전과 철학, 결국 인문학.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그저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 세 개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맥락은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으로서 디자인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고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는 디자인 에이전시 이면서도 종합광고대행사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분야뿐만 아니라 마케팅, 미디어, BTL까지 다양한 사업분야를 가지고 있죠. 이쯤 되니 제가 하고 있는 이 직업을 더 정의하기 어렵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종종 이 업계와 관련이 없는 분들과 모임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명절 가족 모임 포함이요.) 그리고 직업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쉽게 웹디자이너라고 말할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웹디자이너라는 말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우리의 영역을 특정하게 국한시켜 단정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UX 디자이너입니다.라고 하기에도 또 한 번 어려움이 느껴집니다. UX라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질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UX를 단어 그대로 풀어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죠.라고 말하기도 참 난감해요.

얼마 전 채널A의 뉴스에서 UX디자인에 대한 취재가 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도 UX가 관심이 많은 영역이구나 싶어 나름대로 이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시간을 들여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이 나간 화면을 보니 저 역시 화면에 비친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편집도 사실 아쉬웠지만 이렇듯 무엇이다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 설명한 대로라면 제품을 더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이런 고민을 반영하는 사람들을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 줄여서 UX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하고 설명을 돕는 자막이 나오긴 했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지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맥 빠질 만큼 단순한 것 같아요. 그냥 디자이너입니다. 하고 얼버부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디자인이요? 하는 반사적인 질문이 되돌아 오지만 말이에요. 더크림유니언에서도 면접을 보거나 본부 내부의 디자이너들에게 그냥 디자이너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느 하나에 특정 짓지 말자.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디자인만을 오롯이 생각하며 다양한 사고를 하자라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어찌 보면 아직은 모자란 제가 그저 얼버부리는 것일지 모르죠. ‘그냥’이라고 수식어 없이 담백하게 우린 그냥 디자이너라고 말입니다.


앞으로 있을 브런치에서의 글들은 일종의 디자인 에세이로서 디자인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나’의 경험을 담아 써내려 가려고 합니다. 현존하는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보면 마치 논문 한 편을 읽는 것과 같이 어렵게만 느껴져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을 쌓는 관점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섭니다. 권위적이고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벽을 쌓아 두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더크림유니언에서 디자인 본부장을 맡고 있는 저 역시도 이런 점은 두렵습니다. 이론적인 바탕에서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전 아마 몇 마디 못하고 벙어리가 될 거예요.

저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닙니다. 디자인을 연구하는 학자나 교육자도 아니죠. 그저 디자인 좋아하고 앞으로도 이 업계에서 살아가고 싶은 디자인 쟁이입니다.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우리들은 말보다 손으로 먼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있을 글의 문장들이 서툴고 완성되지 않을 수 있어요. 서툰 만큼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의 관점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작성한 이글들이 그만큼 현실적 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흐름대로 넘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됩니다. 보이는 대로 읽어도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가 바라본 눈과 경험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떤 이에겐 “괜찮아”라는 응원으로 어떤 이에게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위로의 말로 전달되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눈을 맞이 하겠죠. 첫눈이 소복이 쌓인 후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이야기들을 꺼내겠습니다. 


전 여전히 ‘그냥’ 디자이너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어떤 디자이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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