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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Jul 11. 2024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https://youtu.be/ShIL_MFfDcI?feature=shared


 요즘 '문해력이 문제다!' '요즘 사람들이 글을 잘 안 읽는다!' 너무 자주 듣는 말인데요. 영상미디어 시대니까 그런가 보다 하다가도 궁금합니다. ‘진짜 그럴까?’

 여기에 '문제의 본질은 문해력이 아니다.' '우린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럼 진짜 중요한 건 뭘까요? 오늘 소개할 책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의 발행인 김지원 님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입니다. 


 일단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독서 인구는 10년 전인 2013년에는 62.4%였는데 2023년은 48.5%라고 해요. 대체적으로 조금은 감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3세 이상 인구 중에서, 1년 중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반이 넘는다는 뜻인데요. 단, 책을 읽는 사람의 경우에는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14.8권 즉 매달 한 권 이상은 읽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책과 잡지책도 다 포함되어 있긴 한데요. 나쁘진 않죠. 권수는 작지만 매달 한 권씩 읽어 나가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요. '우린 진짜 글을 읽지 않을까?' '비디오만 보고 텍스트를 멀리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사실 영상을 보면서도 우리는 자막을 읽습니다. 텍스트를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전달 매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회사에서 보고서는 이제 종이가 아니라 인트라넷으로 처리됩니다. 리포트도 파일로 제출하고 신문 기사도 포털 사이트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전자책까지! 우리는 일상에서 디지털 텍스트의 소비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텍스트가 전달되는 '물성物性'이 바뀐 거죠. 여전히 텍스트는 넘쳐납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 내가 지금 찾고자 하는 정보가 있는, 내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텍스트를 디지털 매체로 쉽게 찾을 수가 있을까? 바로 여기에 문제에 핵심이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텍스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텍스트'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린 주변에 좋은 텍스트보다 나쁜 텍스트가 너무 많다는 거죠.      


 인터넷 공간에는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와 자극적인 표현 혐오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글 무의미한 광고 목적의 글이 가득하다. 그것에서 공들여 읽을 만한 텍스트를 마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일이 겪어 보셨을 거예요. 무언가를 검색하려다가도 의도치 않게 눈에 들어온 '낚시성' 글 제목에 이끌려서 클릭하게 되고, 또 몇 개의 글만 읽어 보면 단순히 복사(Ctrl+C)해서 붙여 넣은(Ctrl+V) 그 내용이 그 내용인 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옵니다. 여기에 온갖 광고까지 끼어 들어옵니다. 어느새 본래 내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저자는, 핵심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을 접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아닐까라고 묻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됩니다.     

 

 저자 김지원 님은 경향신문에 입사해 정책사회부, 문화부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 여러 주제의 글을 써왔습니다. 특히 SNS 채널이 왕성했던 2016~2017년 경에 뉴콘텐츠팀의 기자로 SNS 관리 · 기획 업무를 맡으면서 타 언론사의 글과 동향까지 체크하며 굉장히 많은 기사와 칼럼 그리고 악플을 포함한 댓글들을 읽었다고 해요. 내가 정말 좋다고 느낀 기사와 칼럼은 역시나 독자들의 호응도 좋았다고 합니다. 반대로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분량만 채운 글이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에둘러가는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더라는 겁니다. 인터넷 플랫폼은 자극적인 방식으로 눈길을 끄는 글을 우선 노출합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죠? 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열심히 써도 주목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면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을 잃게 됩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신뢰성 있는 조사를 통해서, 깊이 파고들고, 숙고해서 통찰을 담아내는 글이 점차 사라지게 되고, 고만고만한 글, 자극성 제목이나 그렇게 쓴 진정성 없는 글이 넘쳐 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아! 이 악순환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을 깨우고, 깜짝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배꼽을 잡게 하고 때론 울상 짓게 만드는 좋은 글을 읽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텍스트 생산자들은 너무 오랫동안 읽고 싶은, 가치가 있는, 잃는 재미가 있고, 실용적인 형태의 텍스트를 제공하는 일에 소홀했다.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좋은 글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이런 글에 대한 궁리는 필연적으로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책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2022년 한 해, 신간 도서가 62,285종이 발행됐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8만 종 매일 약 170권이 넘는 신간 도서가 발행되고 있는데요. 이 책을 다 어떻게 읽겠어요? 그러니까 어떤 책을 고르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한 거죠. 또 한 가지, '문해력'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문해력을 둘러싼 국내 풍경이 능력을 위한 독서, 독서를 위한 독서를 강권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에겐 성적과 입시를 위한 키워드가 돼버렸습니다. 


 문해력이란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이란 뜻이지만 '왜 책을 읽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해석하면,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게 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떠도는 지식과 정보를 서로 연결시키는 것, 나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있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문해력입니다. 쉽지 않죠, 시간도 걸립니다. 때문에 스낵 같은 짧은 글이나, '뭐 그렇다고 하던데' 같은 주워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고 긴 호흡으로 쓴 글이 문해력을 키우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린 다시 책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죠. 

    

 2장에서는 '책은 [    ]이다'라는 제목의 6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책은 알고리즘의 대항이다>라는 챕터에서는 과연 우리가 빈번히, 오랜 시간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읽기에 좋은 도구인가를 묻습니다. 배우 이청아 님의 유튜브 채널을 간간히 보는데요. 책을 소개하고 낭독하는 모습이 참 좋더라고요. 이청아 님이 문예지 [릿터 Littor]와 인터뷰에서 종이책을 왜 읽느냐라는 질문에 '광고 없이 글을 읽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맞아요, 인터넷은 알고리즘과 광고라는 유혹이 함정처럼 있죠. 저자는 디지털 환경의 이런 무한한 접속 가능성이 오히려 몰입의 순간을 방해하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또 하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챕터는 <책은 원산지가 표시된 정보다>입니다. '가치 있는 텍스트란 무엇인가?'라는 기준에는 '신뢰도'와 '영향력'이 핵심입니다. 그 텍스트가 믿을 수 있어야 하죠. 또 영향력이 크다는 건 인용이 많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검증받았다는 의미죠. 그러다 보니 텍스트에도 위계가 있습니다. 역사 연구에서도 1차 사료, 즉 원문 연구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터넷에 위키, 블로그, 기사의 출처를 찾아가다 보면 결국에는 책, 논문 같은 1차 자료로 귀결됩니다. 요즘 AI가 업무 효율을 위해서 필수인 것처럼 소개되지만, 적어도 텍스트의 신뢰도로 보면 아직은 저급입니다.

  

 3장은 '도구로서의 책 읽기'라는 주제인데요. 도구라는 말처럼 책 읽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책 너머에 가기 위한 도구라는 뜻이겠죠. 저자는 독서의 중압감을 벗자고 말합니다. 3無 부담 없이, 중심 없이, 대책 없이 읽자고 하는데요. 저자는 이를 '해찰하는 독서'라고 말해요. '해찰'이란 이것저것 부질없이 막 집적거려 놓는 상태를 말하거든요. 집중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뜻인데, 이게 결코 좋은 뜻은 아니죠. 그런데 여기에는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무심코 길에 핀 들꽃을 보게 되는 경험, 또 무심코 서점에 들렀다가 문뜩 눈에 띄는 책을 펼쳐 보는 것,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경험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평소 보던 것도 달리 보이고 보지 못했던 것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면, ' 기웃거리듯 해찰하면서 읽는다'는 말에는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도록, 나의 막힌 생각에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내 안에 꽉 막혀 있는 집착을 좀 비우자는 의미가 있겠네요. 저는 고민이 있으면 서점에 가요. 책이 진열된, 책숲 사이를 산책하듯이 걷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어느 책에는 꼭 있을 것이고 그 책은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죠.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답을 찾는 제 마음과 답을 주려는 책의 마음이 딱 주파수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김지원 님도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나만의 막연한 질문을 지닌 채 마치 스웨터의 도깨비바늘 붙듯 어떤 책이 내게 붓기를 기대하며 부지런히 걸어 다니는 쪽이 좀 더 맞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식의 책 찾기를 의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내 안에 풀리지 않는 질문을 철저히 의식하며 그것에 대한 답 혹은 이야깃거리를 찾겠다는 각오로 안테나를 세운 채 책 속을 탐험하기 때문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독서를 하면서 느껴왔던, 머릿속에서 부유하던 생각들을 마치 언어라는 그물로 엮어서 써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마지막 마침표까지 저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저자는 '책은 자신이라는 비좁은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다.' 책은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나의 껍질을 깨고 그 사이로 맵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책을 다양하게, 함부로 읽을수록 나를 둘러싼 껍질은 더 자주 깨진다. 단 책이 나의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절박한 읽기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종이가 아닌 전자책, SNS 등 우리가 소통하는 도구들이 바뀌었습니다. 종이책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종이의 전성기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죠 그럼에도 종이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책의 마지막 문단을 낭독하면서 오늘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 그 자체보다도 우리가 바뀐 도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의미 있고 멋과 재미도 있는 소통으로 우리의 경험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그 핵심을 결국은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 속 저자의 '수고'와 당대의 그 책들을 읽고 감격하고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수고' 그리고 그런 수고로운 텍스트들을 시공을 초월하여 진득하게 읽어낸 수많은 신실한 독자들의 '수고'해서 찾고 싶다. 그 고갱이를 존중하고 또 지켜나갈 수 있다면 미래에도 꼭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의미 있는 소통을 해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번쩍한 기술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도 그런 많은 수고 없이 매끈하게 모든 것이 자동으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을 나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 우리가 종이책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종류의 종이책들이 품고 있는 그 '번거로움', '수고'들 때문에 말이다.”     


 실용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굳이 그런 수고로움을 거듭하며 만들어진 책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텍스트를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김지원 님'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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