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 승률을 높이는 비법
언론 지망생 중엔 그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조선일보스러운' 인재만 원하고, 한겨레는 '한겨레다운' 인재를 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 말이죠.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또 의외로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생각해 볼만한 거리가 있습니다. 각 언론사는 자신들이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다고 여길까요, 아니면 본인들은 타인보다 좀 더 진실을 꿰뚫고 관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을 할까요? 솔직히 그 어떤 언론사라도 자기네 시선에 왜곡이 아주 없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곳은 자신들이 경쟁사에 비해선 좀 더 객관적인 진실에 가까이 있다 생각하고 또 믿을 것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객관과 중립'에 근접해 있다고 믿는 입장에선 언론인 지망생이라는 녀석들이 애써 ‘조선일보스럽게’, 혹은 ‘한겨레답게’ 보이려고 하는 시도가 참으로 인위적이고 인공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심하게는 거북함을 넘어서 인위적 위장이나 아부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찍혀 버린 지망생이 좋은 점수를 받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고요. 설마 그러겠냐 싶고 농담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현직자들은 언론인 지망생들의 그러한 어필을 꽤 불쾌해 하더군요. 본인들은 정말로 세계의 진실을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인 자세로 전하고 있다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문이건 방송이건 언론은 다수가 합작하는 종합 예술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언론사마다 문화나 분위기 차이는 있어서 구성원 개인의 색이 드러나는 것을 좀 더 용인하는 곳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언론사라 해도 일단은 신입 선발 단계에선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웬만해선 선호하는 편입니다.
언론사에서 산출하는 콘텐츠는 그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건 협업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PD는 말할 것도 없고 기자도 촬영기자, 편집기자, 사진기자 등 누군가와는 반드시 협력하고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더불어 방송과 지면을 통솔하는 본부장, 국장, 부장 등의 의지도 충실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자신만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언론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고 몸부림치는 신입을 좋게만 볼 수 있을까요? 기자나 PD가 제각기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우둘투둘한 난장판으로 방송이나 지면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우선은 새로운 구성원이 기존 조직과 융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선, ‘조선일보스러움’이나 ‘한겨레스러움’을 미리 갖췄답시고 난리를 치는 인물보다는, 오히려 ‘백지’ 쪽이 훨씬 선호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조선일보 바깥에서 조선스러움을 함양해 봐야, 한겨레 바깥에서 한겨레스러움을 함양해 봐야 뭘 얼마나 정확히 하겠습니까? 애매하고 이상하게 별 요사스러운 것을 조선답게, 한겨레답게 라면서 묻혀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게다가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그런 부류는 꼭 그렇게 '요상하게 물든 채'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실무적으로는 이러한 인원들이 자연스러운 조직 융화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더군요. 여러 모로 퍽이나 곤란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언론사 대부분은 ‘머리 좋은 백지’를 선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일단 인재를 뽑아 두기만 하면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니까요. 따지고 보면 이상한 선입견이 박혀서 오는 애를 교정하는 편이 훨씬 힘들기도 하죠. 뒤집어 말하자면, 논술이건 작문이건 면접이건 지망생으로서 평가를 받는 단계에선, ‘나는 재능 있는 백지다, 귀사의 색으로 물들 준비가 됐다’는 기색을 내비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 학생들은 보수지 진보지를 가리지 않고 지원하는 곳마다 빠르게 합격하는데, 어떤 친구들은 암만 기를 쓰고 준비해 몇 차례를 도전해도 낙방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언론고시는 칼을 뽑는 시험이지, 칼잡이를 뽑는 시험이 아닙니다. 칼이 칼잡이로 올라서는 것은 20~30년 뒤의 일이죠. 지금은 칼잡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예리하게 베어낼 수 있는 칼을 고르는 단계일 뿐입니다. 물론 무협지에 나오는 요도처럼, 자아가 있고 다루기 힘든데도 워낙 명검이라 뽑히는 경우도 아주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드문 소수 사례고요.
언론고시라는 시험은 평가의 초점이 ‘포텐셜’에 있습니다. 모든 언론사는, 정확히는 '제대로 된' 모든 언론사는 역량이 우수한 인재를 뽑기만 하면 그들을 장차 자신의 입맛에 맞게 키워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한 채로 응시를 해야 여러분의 언론고시 승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