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논술과 작문의 TPO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하면, 보통은 그가 어떤 장르의 글이라도 웬만큼은 써낼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문학 분야 공모전을 휩쓸었던 사람이 언론사 시험에선 필기도 통과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요.
그것은 글에도 ‘용도’에 따른 작법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해 말하자면 ‘순수예술’과 ‘산업디자인’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올바른 정보를 제한된 시공간 조건 하에서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언론인의 글은 ‘감동과 미학’을 추구하는 문학 계통의 글과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언론고시에서는 순수예술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글재주’라는 개념을 오인해 언론고시에서도 필력과 테크닉을 과시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탈락 확률을 급격히 높이는 것은 당연지사고요. PD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시사 PD 전형에서 드라마 기법을 적용하는 등의 시도를 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현역 언론인 중에서는 '뽕끼'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나름의 기교를 구사하려는 인물도 적지 않긴 합니다. 일부는 그러한 시도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덕에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피카소도 고전미술은 마스터하고 자신만의 테크닉을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피카소는 그 시점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을 뿐이죠. 아무튼 언론사 역시 ‘자기 직군의 기본기는 마스터한 상태’에서야 새로운 시도를 인정해 줄까 말까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언론사는 모든 언론고시 응시자를 미완성 상태로 간주하고요. 간단히 말하자면, 적어도 언론고시에 도전하는 '챌린저' 단계에서는 기교를 참고 감성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쉽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술업계에 ‘입시미술’이 있듯, 언론계에도 입문자들을 평가하는 기본 테크닉이 있습니다. 주어 하나에 술어 하나, 문장은 최대한 짧게 등등. 어떤 수업이나 강의를 듣더라도 언론인의 글쓰기라 하면 가장 먼저 소개되는 그것들이 바로 일종의 언론업계 ‘입시미술’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언론고시 수업’과 ‘실제 기사나 칼럼, 혹은 방송 콘텐츠’가 의외로 상당히 동떨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대 지망생이라면 입시미술을 거의 무조건 마스터해야 하지만, 현역 작가 중 입시미술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입시미술을 한참 전에 지나온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현업 언론인들은 기본기가 이미 몸에 밴 상태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형을 하거나, 혹은 자신만의 테크닉을 구축해 활용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기사나 칼럼을 달달 외거나 필사하는 것은 언론고시 준비엔 의외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하면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입시미술'을 배워야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업 테크닉'에 벌써부터 젖어 버리면 곤란하니까요. 더군다나 필사는 어차피 어느 언론사에 입사를 하면 ‘그 회사에서 표준으로 삼는 글’을 대상으로 실컷 하게 되니, 언론고시 준비 단계인 수험생에게는 개인적으론 그리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언론고시를 위한, ‘입시미술’ 같은 스타일의 글쓰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말씀을 드릴 예정이고요. 바로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는 일단 여타 분야나 장르의 글을 언론고시에 함부로 끌어오면 안 되는 이유를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