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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덟, 면접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픽션 | 어느 면접의 초상

by 문현웅

나는 보았다.


다섯 평 남짓한 방 안에

잇따라 들어온 찬란한 청춘

그리 길지도 않은 지난 생을 애써 펼쳐 보이다

반 시간도 채 흐르기 전에 그 모든 것을 부정당하고

바스라진 꿈 위에서 눈물짓고 돌아서는 모습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것을 목도했던 나는, 이른바 어른이라는 나는

그 무엇 하나 막아내지도, 구해내지도 못했다.


이에 부끄러워, 나는 펜을 잡는다.




"무릎 꿇어 봐."


"네?"


면접자의 놀란 눈이 사장을 떠나 내 쪽으로 향했다. 나는 시선을 서둘러 피하며 인사팀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덧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직감했다. 아, 뭔가가 시작됐구나. 막을 수조차 없는 무언가가.


"당신, 금 영업으로 일 하고 싶다고 여기 앉아 있잖아?"


"네, 그렇습니다."


"영업을 하다 보면 사람이 실수도 하겠어, 안 하겠어?"


"하겠... 습니다."


"그런 때는, 어, 무릎 꿇어서라도 말이야, 사과를 해서 래처를 잡을 수 있어야지. 내 말이 틀려?"


"...아닙니다."


"말로만 할 수 있다 하고 마는 게 아니고, 짜 그런 상황이라 생각하며 무릎 꿇고 사과해 보라고."


면접자의 무릎이 미세하게 후들거렸다. 그의 눈길은 은근히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사장과 인사팀장에게선 구원을 바랄 길이 전혀 없으리라는 나름의 직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아련한 기대가 무색하게도, 나 또한 이 공간 안에서는 매한가지로 힘없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가슴팍을 죄어 오는 상호 간의 침묵 속에서, 나는 몽땅 자리를 비워 버린 영업팀을 남몰래 원망했다. 팀원을 뽑는 중차대한 날에 누구 하나 남 이 없이 다 현장에 나가 있으면 어떡하란 말인가. 그러다 이내 다시 생각을 추스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엉뚱한 사람을 탓하면 안 되지. 만악의 근원은 어떻게 보더라도 사장일 따름이니. 영업 직군이 어쩌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날엔 식충이라도 본 것 마냥 경멸하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는 바로 그 인간. 더군다나 면접관이 둘 뿐이면 가오가 안 산다며 난데없이 물류팀장을 영업 면접 자리에 끌고 온 사람 또한 누구였던가.


" 하는데? 당신, 사기 친 거야?"


"네?"


면접자의 크게 흔들리는 동공이 사장 쪽을 향했다.


"거 뭐야 자소서엔, 실수했을 때 솔직히 인정하고 대책을 찾는다 써 놨잖아. 그런데 내가 지금 무릎 꿇고 진심을 보이며 사과하라 하는데 안 하고 있잖아. 응? 거짓말한 거네?"


물론 궤변이다. 사람이 정녕 무릎을 꿇어야만 솔직한 사과로 인정한다고 그 누가 정해 놓았던가. 하지만 갓 회 생활을 시작할까 말까 한 풋사과 입장에선 사장 면전에서 아무래도 그런 반박을 펼칠 수가 없다. 장차 수십 년에 걸칠 밥줄이 한순간에 좌우되는 자리에서라면 더욱이나.


가늘게 떨리는 무릎이 끝내 바닥에 닿았다. 인간의 존엄성이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문득 울리는 듯했다. 려다보이는 양복엔 칼날 같은 선이 또렷했다. 고개 숙이는 청년의 표정을 나는 볼 수가 없었다. 비단 각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Dreamstime


"그래서."


"...?"


청년은 자세를 바로하며 사장을 바라보았다. 눈동자 한편엔 감추지 못할 수치심과 괴로움, 그리고 어리둥절함이 얼룩져 있었다.


"무릎만 꿇으면 끝이야?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뭐라고 할 건데."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려왔다. 청년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낮게 읊조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엷게 깔리던 말이 이내 사그라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문득 떠올렸다. 면접이 시작되기 직전 흘끗 보았던, 어느 지방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 문예창작학을 장학생으로 전공했다 적어 내린 그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아마도 한때는 문학도가 될 꿈에 부풀었을, 지금은 먼지 쌓인 낡은 바닥에 이마를 댄 그의 찬란했던 이십대를.


"그만."


사장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선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와 새삼 사람 좋은 낯을 지어 보이려는 그의 표정은 적잖이 비릿했다.


"거, 오해하지 말고, 내가 갑질하려는 게 아니라, 응, 영업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는 거야. 영업이 뭐야, 사람의 마음을 잡아서 돈을 버는 일 아니겠어? 응? 언제 어느 때고 하수구에도 뛰어들고. 가시나무에도 기어오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상시 필요한 거야. 영업을 하려면."


일어선 청년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 곱게 다려진 양복바지는 무릎 부근만이 반질거렸다. 사장의 장광설은 한참을 이어졌다. 청년뿐 아니라 우리마저도 표정을 잃을 때쯤에야 그는 비로소 말을 맺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청년은 비척이는 걸음으로 인사팀장의 안내를 받아 문 밖을 나섰다. 인간애 따위는 형체 없이 무너진 지 오래건만, 의연하게도 그는 방 안쪽을 향한 고개 숙인 인사를 끝내 잊지 않았다.


"별로지?"


문이 닫히는 순간 사장이 내뱉은 말이었다.


"내일 오는 애가 스펙이 훨씬 낫더라."


장장 30분에 걸친, 엄혹했던 지난 면접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전부였다. 나와 인사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은 우리에게도 그만 가 보라는 듯 손을 휘적였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세면대 부근으론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물자국이 역력했다. 손만 씻은 정도는 아닌 듯했다. 소변기 쪽에서 은은히 풍기는 그 내음이 오늘따라 한층 더 지릿했다. 패딩을 입지 않고선 변기에 앉을 수조차 없는 요즘 같은 계절엔 물청소도 하는 둥 마는 둥인 모양이다. 아주 썩어버린 환풍기는 제 역할을 못 하는 와중에도 소리만큼은 우렁차기 짝이 없다.


찬물 가득한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지우는 동안 그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따위 화장실이 있는 회사에서 모욕을 당하기 위해 그는 른 해 가까운 세월을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것일까. 어쩌다 거기에 먼저 들어앉은 우리는 대관절 무슨 자격과 권리로 생판 타인을 그렇게나 거칠게 무릎 꿇렸을까.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인사팀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내일도 영업팀 없대요. 두 시 반에 사장실로 오세요.>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씹어 삼키며 세면대 수전을 꾹 눌렀다. 암만 끝까지 힘주어 밀어도 가느다란 물줄기가 조르르 샌다. 나사 쪽을 만져 보려다 이내 손끝을 거둔다. 겨울이니까. 내버려 둬야 얼어 붙지 않겠지. 나는 그렇게 되뇌며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현실에서 겪은 듯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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