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 타오르는 청춘은 당신들을 위한 연료가 아니다
청춘을 예찬하는 작자는 필히 저주받아야 한다.
타오르는 젊은 피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려는
얄팍한 욕망을 섬기는 나팔수일 따름이니.
적어도 지금, 내가 몸담은 회사에서는 그러했다.
인사쟁이 놈들이 드디어 돌아 버렸구나.
원래부터 제정신인 인간들은 아니었다만. 이젠 완전히 맛탱이가 나가 버렸구나.
HRBP 부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미국의 구인 플랫폼인 레주메빌더닷컴이 지난 2024년 5월 채용 관리자 16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40%가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가짜 채용 공고를 올렸습니다. 복수 응답을 받은 결과 67%는 외부 인재에게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66%는 회사가 성장하는 것처럼 홍보하기 위해, 63%는 내부 직원들이 추가 채용으로 업무량이 줄어들 것이라 믿게 하기 위해, 62%는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대체 가능한 존재임을 알리기 위해, 59%는 나중을 위해 이력서를 수집 및 보관할 목적으로..."
요컨대, 우리네 좋자고 실제론 사람을 뽑지도 않을 채용 공고를 가라로 만들어 올리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되어 먹은 사이코패스 종자들인가. 구직자들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듬고 깎아 내는 데에 쏟는 시간과 정성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x인과 잡xx아에 공고 올릴 때에는 돈 드나요?"
잡은 펜 끝으로 책상을 한참이나 톡톡 치던 대표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노출도를 높이려면 유료 상품을 구매해야 하지만, 단순 게시 자체는 무료입니다."
"공고를 올리고 실제 채용을 진행하지 않았을 때 페널티는 없나요?"
"선발 기준을 충족하는 적격자가 없을 경우 미채용할 수 있음을 명시해 두면 문제없습니다."
"청년친화강소기업 지정엔 영향이 없겠지요?"
"요건 중 이것과 관련된 항목은 없습니다."
부팀장의 대답엔 줄곧 망설임이 없었다. 상시 성향도 겹치고 죽이 잘 맞았던 대표와 HRBP팀이었던 만큼, 이런 자리에서 질문을 받게 될 포인트쯤은 충분히 짐작과 대비가 돼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떤 면에선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하는 짓이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 공고 내용을 짜는 데에도 일손이 필요하며, 거기에 드는 노동력은 결국 현업에서 그러잖아도 부족한 업무 공수를 쪼개 차출하게 될 것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음, 그러면 각 팀에서 JD를 연구해 공고를 만들어서 주요 채용 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하죠. 양식이랑 일정은 HR에서 정리해서 전파해 주시고요. 가짜라고 대충 하지 말고 진짜로 팀원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어떤 인재가 필요할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 진짜 공고로 전환할 수 있도록요."
역시나 양심을 쑤셔 오는 통증과 귀찮은 잡무 더미는 결국엔 일선 실무 부서들이 감당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표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납득해서가 아니었다. 합리적인 토론이라는 미명 하에, 대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확실한가요?', '책임질 수 있나요?'를 마음껏 시전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할 수 없다. 경사진 운동장에선 화술과 전략 따윈 무의미하다. 상황을 가급적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음 대책이나 서둘러 마련하는 편이 심신에 훨씬 이로웁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체득한 지식이자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대표는 자못 의기양양했다. JD를 지나치게 잘 구성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오래도록 이어진 잔혹한 취업난의 여파일까. 평소 같았으면 우리 회사 쪽으론 실수로라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심히 경탄스러운 스펙을 보유한 청년이 채용 공고에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 홍보팀 것에.
도리어 면접 진행을 반대한 쪽은 다름 아닌 HR이었다. 희망하는 연봉은커녕 전 직장에서 받던 수준만 감안해도 우리 쪽에서 맞춰 주기가 사실상 불가하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대표는 강행을 고집했다.
"제가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일정 잡아 주세요."
대표가 생각이 있다는데 우리가 무엇을 달리 어쩌겠는가.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시곗바늘이 정시를 가리키는 순간 제법 단정하게 차려입은 키 큰 청년이 면접장 안으로 들어섰다. 나이는 스물아홉, 경력은 3년 차. 썩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푸근한 데가 있는, 오히려 어떤 면에선 웬만한 미남 이상으로 대하기에 마음 편한 인상 좋은 젊은이였다.
"명문대를 나오고, 이렇게 좋은 언론사에 다니다, 저희 회사로 오려하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업계에서 귀사만큼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기업의 성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설령 지금은 회사 규모가 작다 해도, 장래성과 잠재력이 충분하다 생각해 이른 시점에 합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따금 매체에서 인터뷰를 걸어오는 때마다, 이른바 C레벨급 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AI를 화두로 잡고서 일사불란하게 입을 털었던 보람은 있었던 모양이다. 대표는 가볍게 끄덕이고서 질문을 이었다.
"업무에 AI 툴을 많이 쓰시나요?"
"챗GPT와 제미나이, 미드저니와 나노바나나와 그록 등을 자주 사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나요?"
"챗GPT나 제미나이는 초고를 뽑아내거나 문장을 교정할 때 주로 쓰며, 미드저니와 나노바나나는 기사 혹은 콘텐츠에 맞는 이미지가 없을 때 활용합니다. 그렇게 생성한 이미지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으면 그록에 넣습니다.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첨부한 링크를 봐주시면, 어떤 느낌인지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면접자의 답변이 유창할수록 대표 곁에 앉은 인사팀장의 얼굴엔 되레 심려가 깊어지는 듯했다. 인재 자체는 괜찮다. 다만 애초에 시장에 훌륭한 인적 자원이 없어서 우리가 그간 채용을 주저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동년차 기준으로 우리 회사 급여 레벨을 훌쩍 넘는 인물을, 대표는 무슨 수로 영입할 궁리인가.
"희망 연봉을 8000만원으로 적어 주셨는데요."
"네. 공고에서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해 주신다 해서 그렇게 제출했습니다."
"그럼요. 드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대표를 돌아본, 나와 인사팀장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렇게 되면 TO가 못해도 2명 몫은 날아간다. 더군다나 홍보는 일감이나 투자를 단시간에 끌어올 수 있는 포지션도 아니다. 드물게도 인사팀장이 대표를 향해 입을 떼려는 순간,
"단, 그렇게 받는 만큼, 확실한 성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네, 그래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쭙겠습니다. 지원자께서는 만일 입사하시면, 그리고 희망한 만큼 연봉을 받는다면, 저희 회사에 어떤 식으로 그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청년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눈을 두어 번 천천히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말을 이었다.
"우선, LLM을 보도자료 초안 제작에 활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AI에 기반한 CRM을 활용하면 자료 배포와 응대를 상당 부분 자동화 가능하며 출입하는 기자 데이터도 구조화된 관리를..."
"아니, 아니에요."
대표는 안색을 바꾸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선 다소 과장된 폼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건 AI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 아닙니까. 연봉 8000만 원을 받는 사람의 인사이트라 할 수 없습니다."
"......"
순간 청년의 눈빛이 확 타오르다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들릴락 말락 한 낮은 소리로 숨을 들이쉬고선 참착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이런 작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홍보팀은 매일 아침 하는 조간 뉴스 기사를 스크래핑할 텐데, 챗GPT를 활용해 파이썬에서 작동하는 스크랩 자동화 코드를 짜면 개발자 없이도..."
"잠깐만요."
대표는 또다시 말을 막고선, 기가 차다는 투로 쏘아붙였다.
"그것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거 유튜브 조금만 찾아보면 눈에 보이고 따라 하면 되는 아이디어 아니에요? 지원자분만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묻고 있는 겁니다. 연봉 8000만원 받는 사람이면 그런 걸 할 수 있어야 해요. 내 말이 어렵나요? 아니면 틀렸나요?"
대표는 답답하다는 듯 면접관으로 배석한 팀장들을 둘러보았다. 암담했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늘 우리 몫이어야만 하는가. 물론 속마음을 굳이 내비치는 직원은 누구 하나 없었다. 다만 지원자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청년은 이젠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감추지도 않았다.
"아,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조간 스크래핑 안 해요."
자랑이다 아주.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청년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 표정이 살짝 구겨진 그는 이미 대표의 말에 대꾸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하지만 저도 이해는 합니다. 이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 분의 역량을 모두 확인하고 평가하긴 어렵죠. 그래서, 저희가 제안하는 계약 조건은 이렇습니다."
대표가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인사팀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종이엔 '3/9/12'라는 글씨뿐이었다.
"계약직을 2년 하고 정규직 전환 여부를 이야기합시다. 그 2년은 3개월, 9개월, 12개월로 끊어서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가죠. 각 기간마다 성과를 평가해서..."
순간 쾅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어느새 벌떡 일어난 청년 뒤쪽엔 의자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는 인사는커녕 대표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서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홍보팀장님."
"아... 네."
"조간 스크래핑 자동화 시스템 만듭시다. 챗GPT 써서 파이썬에 어떤 코드 넣으면 되는지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도자료 초안 작성이랑 배포도 어느 수준까지 자동화가 가능할지 테스트해 진행하세요. 홍보팀 TO 하나 빼도 될 것 같네요."
"......"
"홍보팀도 AI 좀 연구하세요. 우리 회사 전체가 AI에 관심 많은 거 알잖아요. 조금만 생각하고 고민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왜 여태 안 하고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대표는 의례적인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일어섰다. 배석했던 직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남은 회의실에서, 내가 켠 것은 챗GPT가 아닌,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최신 업데이트를 해 두는 이력서 파일이었다.
홍보팀을 맡은 죄로 메이저 언론사 기자를 면접 자리까지 불러내 도발하고 이용해 먹은 후폭풍을 오롯이 받아 내고 싶진 않았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라 추후로도 거듭해 반복될 일이라면 더욱이나 그러했다. 절이 위험한데 중이 떠나지 않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 곱씹으며 나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리게 될 이력서를 평소보다 한층 더 공들여 다듬기 시작했다.
#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현실에 아주 없는 일이라고까진 말 못 하지만, 실제 벌어진 일과 내용이 비슷해 보인다면 우연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