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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an 12. 2020

차 한 잔 하고 가세요-리지 블루스

쓰는 생활

 서서림에 다녀오는 길에 인근에 책방이 한 군데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많이 들었던 터라 익숙했던 곳.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어서 이참에 들러보자고 마음먹었다.

 내비게이션은 맞는 경로로 나를 안내했지만 길치인 나는 뱅글뱅글 돌며 좁은 골목들을 배회했다. 폐지 할머니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한참을 뒤에서 서있기도 했고 일방통행인 길이 아닌지를 살피며 조심스레 꺾어지다 보니 다행히 눈에 띄는 파란 지붕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곳에는 손님이 한 분 와계셨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도 함께 이야기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혹시 SNS에서 일정을 보고 오셨냐고 묻는다. 여기 예약제인가. 이곳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뭔가 프라이빗한 느낌이 들겠는걸.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눈은 빠르게 책장을 훑고 있는데 사장님이 종이로 만든 메뉴판을 들이민다. 이 곳에 오는 분들께는 차를 대접한다고.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의 차 종류에 당황하며 훑어보다 마침 오후 세시, 믹스커피 한 잔이 당기는 시간이라 그걸로 부탁드렸다. 진한 맛과 연한 맛 중 고르라는데 성격상 이도 저도 아닌 편이라 중간맛을 골랐다. 그러는 사이에 손님으로 보이던 분은 가셨고 책방에는 물이 끓는 소리만 남았다.

 이곳은 공간이 작다. 책장도 많지 않다. 하지만 책의 종류는 여러 가지였다. 그림책에서 소설까지. 독립 서적에서부터 심리, 철학서적까지. 책장 칸칸이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었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 우울할 때 읽는 책, 위로가 필요할 때 읽는 책. 서점 사장님은 여러 종류의 책을 골고루 읽는 분임에 틀림없었다.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순간 사장님이 입고 있는 치마의 특이한 문양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한낮의 몽골.(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 풀을 뜯는 초원 한가운데에 원형의 게르 안에 들어가 차를 대접받는 안락함.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파운드 케이크도 한 조각 잘라주었다. 나는 차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고 사장님은 노트북으로 할 일을 하는 어색한 침묵이 잠시 감돌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점이 편안함을 주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니 이곳의 공간이 좁아 행사가 있을 때는 손님을 받지 않으신다고 한다. 나는 한 명이었고 서점 안에도 한분밖에 없었기에 운 좋게 둘러볼 수 있던 것이었다. 이 곳의 사장님도 글을 쓰시는 분이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책을 골라 나왔다. 같은 수원이지만 동네가 멀어서 또 보긴 힘들겠다는 솔직한 인사를 끝으로 나는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밍밍했던 오늘의 믹스커피 한 잔이 그리울 때 언젠가 또 들리게 되지 않을까.



·리지 블루스에서 구입한 것

-외로운 재능, 이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습니다 두 권을 구입했다. 외로운 재능은 나 또한 인정받지 못할 재능이 있어서(예를 들면 네비를 보며 길을 못 찾는다거나), 이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습니다는 앞뒷면이 다른 구성이 특이해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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