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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an 28. 2020

조용한 마을 속에 피어나는 활기-춘천 실레책방

쓰는 생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거리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마음은 바빠지고 있었다. 높은 산맥들 사이로 노을이 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대관령에서 시작해서 강촌으로 끝나도록 계획한 이번 여행에는 서점 방문이 끼어있었고 책방 휴일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마침 변경된 여정으로 인해 서점이 쉬는 날 전에 가까스로 방문해볼 수 있었다. 세 아이는 멀미와 피곤으로 뒷자리에 뒤엉켜 자고 있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일곱 시가 되기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다.

 김유정역 맞은편에 있는 작은 마을. 기와지붕들이 보이고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조용히 흘러나오는 곳. 올망졸망 모여진 집들이 보이자 도착이라는 표시가 떴고 나는 단번에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파란색 낮은 지붕이 차분한 책방에는 트리가 반짝거리고 조용한 음악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작은 마당에 깔린 자갈을 자박자박 밟고 옛 시골집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책들이 빼곡히 보였다. 인기척이 들리도록 보이지 않는 사장님은 몇몇의 사람들과 책방 안쪽에 도란도란 앉아계셨고 이 시간에 처음 보는 이가 누굴까 호기심을 띠고 바라보셨다.

  이곳은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내서 입고하게 된 곳이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뒤지다가 알게 되었고 지방 곳곳에 책들이 입점되면 좋을 것 같아 취해본 연락이 입고로 이어졌다. 사진들을 통해서 먼저 본 후에 책방을 가보는 일이 많지만 이곳은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먼 길을 가서 보게 되는 즐거움과 기대감을 한껏 누려보기 위해서. 벌써 어스름이 밀려오는 마을 속에 자리한 이곳은 안에는 주황빛 등으로 따스하게 반짝였고 어떤 모임인지 모를 몇몇의 사장님과 동년배로 보이시는 분들이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며 책을 구경하는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계셨다.

 일주일 전에 입고한 우리의 책 '매일의 메일'이 책들 사이에서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께 소개를 했고 사장님은 반기며 더 어린아이들의 엄마일 거라 상상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책방을 방문할 때 그곳을 상상하듯 책방 사장님들도 책을 읽으며 저자를 상상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묘한 유대감이 밀려왔다. 아이들도 데리고 들어오라며 옆에 있는 비밀의 방 같은 다른 공간을 보여주셨다. 헌책만 진열해 놓은 왼쪽 구석의 방. 비밀의 서재 같은 그곳이 아늑하게 느껴지는걸 눈치채셨는지 가끔 혼자 와서 졸다 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기분이 내킬 때 혼자 와서 쉬다 가라고도 말씀해주셨다.

 세잔의 코코아와 한잔의 커피를 대접받으며 짧지만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장님은 줄곧 그곳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생활하시다가 은퇴 후에 서점을 하며 보내고 싶어 책방을 차리셨다고 한다. 어쩐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장님을 뵙고 살짝 놀랐는데 그것은 책방을 들어설 때 보면서 지나친 아기자기한 장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립출판물은 이삼십 대의 전유물이다라는 편견을 다시금 깨게 해주는 방문이었다. 차를 마신 후 몇 권의 책을 골랐고 아이들도 두 권의 책을 골랐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책을 고르게 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공간. 사장님은 전직 교사답게 아이들을 위한 소책자를 챙겨주셨다. 바다생물, 식물, 동물들에 대한 것들. 그것을 보면 길가의 나무와 풀들을 구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기뻤다.

 사장님의 모임 멤버들이 불편할까 봐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급하게 나왔는데 아차, 챙겨주신 신문과 무가지들을 두고 나온 게 생각났다. 다행히 마을 입구까지 갔을 때 일 때문에 온 전화로 남편은 차를 세웠고 나는 책방까지 달려가 그것들을 챙겨 왔다. 저녁식사를 하다가 다시 마중을 나오게 된 사장님은 나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다음에 잘 나왔는지 확인하러 오라고 하셨다. 이렇게 다시 한번 방문해야 할 계기가 생겼다.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오는 내내 뛰어서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숨이 가라앉을 준 몰랐고 여운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에 혼자 와서 조용한 방에서 졸다 가라는 약속. 사진을 확인하러 다시 들리라는 먼길을 가야 하는 이유 계속 마음속에서 두근거렸다.


 ·실레책방에서 산 것들

-달에서 온 소포,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하셨다.)을 구매했다. 비밀의 방에서 아이가 고른 중고책 두 권도 구매했다. 빵가게를 습격하다 와 거짓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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