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 시작하는 것은 뒤로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독립출판의 세계도 그러했다. 책을 만들어 완성을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가 입고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입고 메일을 쓰고 서점들의 목록을 뽑아보면서 당연히 대답이 오겠지 했던 생각들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심지어 메일을 읽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것이 하루 동안 많은 입고 메일이 쌓이기 때문이고 서점 업무로 바빠서 미쳐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지워지지 않는 수신확인, 죄송할 것도 없는데 죄송스러워하며 보낸 거절 메일은 흔하게 툭툭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나의 꿈은 원대했다. 신인작가상 모음집이나 등단 목록에는 언제부턴가 8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이 메워가고 있었다. 나이를 먹고 여물어야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달은 후부터 나의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자비출판이었지만 나는 더 잘 쓰고. 유명해지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어쩌면 나는 눈앞에 있는 작은 목표들부터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입고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고 방 한편에 자리한 상자 속에는 200여 권의 책이 고요히 쌓여 있었다. 독립작가들의 훌륭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은 매일매일 신작 소개로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나는 발끝은 보지 못한 채 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싶은 애벌레에 불과했다.
그렇게 한참 열등감과 조바심에 젖어 있을 때쯤 다정과 나눈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목표를 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다정은 입고가 거절되었던 '유어마인드'에 입고가 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글쎄, 나는 딱히 목표가 없었다. 어느 서점에 입고가 된들 큰 성취감으로 다가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책을 읽고 재밌었다, 감동을 주었다 등등 좋은 표현을 해주는 주변인들은 종종 있었지만 내가 쓴 글이 정말 괜찮은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정과 함께 연희동에 있는 유어마인드에 방문했을 때 다정의 그 소망이 작지만 크고, 크지만 현실성 있는 우리의 다음 도약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건물 2층에 위치한 조용한 공간. 책방의 로고만큼이나 깨끗한 창 밖으로 안에 고여있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집부터 그림책까지 다양한 책들이 모여있었고 여러 개성 있는 일러스트들을 보면서 그 안에 진열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장벽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먼저 들렀던 서점에서 책을 여러 권 사지 않았다면 이 곳에서 마음 가는 대로 집어 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가장 유어 마인드스러운 책을 고르고 말겠다고 결심했고 나의 눈은 바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화는 잘 구매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곳에서는 고르고 싶어 졌다. 결국 한 권밖에 구매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다행히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가끔 인스타를 통해서 둘러보고는 하는데 오늘 사고 싶어 지는 책이 또 입고가 되어 불현듯 나를 키보드 앞으로 앉게끔 만든 유어마인드. L자 파일 굿즈와 함께 구매 버튼을 눌러야 하나 집에 읽지도 않은 책들이 가득한데 무거운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유어마인드. 입고가 되지 못한 서점이라 갔다 온 후기를 글로 남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에이, 말자 했는데 기억 속에서 꿈틀대다가 기어이 글로 나오게 된 유어마인드. 어쩌면 나의 다음 목표도 조금씩 정해지고 있는 듯하다.
사고 싶어 지는 책을 만드는 것. 글을 잘 쓰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꿈꾸는 것은 내가 나로서 타인에게 읽히는 것. 멋들어진 비유와 있어 보이는 단어 선택,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획기적인 표현능력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저 가진 그대로 잘 써보자는 용기를 그 날 그곳에서 읽고 왔다. 언젠가 나도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날을 꿈 꿔보면서.
·유어마인드에서 구매한 것
- 무슨 만화라는 제목의 지은이ㅇㅇㅇ의 네 컷 만화. 중독성 있는 그림체와 네 컷의 허를 찌르는 스토리들. 나는 이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달력이 있는데도 또 구매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2020년도 달력도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