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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학드림 Jan 09. 2017

Prologue. 과학으로 삶을 토닥토닥

과학은 왜 배워야 할까? 과학은 교양이다.

과학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늘 요구되는 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 기사는 '쉽게' 쓰라는 것. 학부 시절 과학 교육을 전공할 때도 과학은 늘 '쉽게'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과학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수십~수백 년간 과학자들이 일궈 놓은 과학 이론들을 '쉽게' 설명하겠다는 과학 콘텐츠들은 어쩌면 '사기'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그리고 왜 유독 과학만 쉽게 쓰이고 설명되어야 하나요? 최근 열풍인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과 '역사'에도 '쉽게'라는 잣대를 적용하던가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어도 쉽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어려운 수식의 숲과 난해한 개념의 바다를 건너고 나면, 우리는 드넓은 우주와 자연, 생명의 경이로움과 마주할 수 있어요.


과학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수식의 숲과 난해한 개념의 바다를 건너고 나면
우리는 우주와 자연, 생명의 경이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학은 인류 사회를 진보시켜 왔습니다. 16세기 지동설은 천동설을 믿어 왔던 인류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1859년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은 인류가 수많은 생명의 가지들 중 그저 그런 하나의 가지일 뿐이라는 걸 밝혀내면서 '인간 우월주의'에 일침을 가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학이 인류 사회를 진보시켰을 때는 과학자들이 아닌 대중 전체가 당시의 과학을 이해했을 때예요. 인류와 사회의 진보, 이것이 우리가 과학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죠. 190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 인류 사회가 진보하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시공간이 하나라고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인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게 아닐까요?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들이 과학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인류는 한 단계 도약한다

  

2년 전, 미국 서부 과학관으로 취재를 갔을 때 저는 놀라운 광경과 마주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관을 가면 보통 아이들이 많잖아요?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미국의 과학관은 특이했어요. 아이들은 물론, 나이 지긋한 노인부터 성인 남녀까지 다양한 연령층들이 과학관을 돌아다니고 있었거든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여기 왜 있는 거지?-란 궁금증이 생겨 취재에 동행했던 가이드에게 물어봤죠.

"미국 과학관에는 연령층이 다양하네요? 한국엔 주로 어린이들만 과학관을 찾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과학도 교양이자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안 그런가요?"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래. 과학도 교양이지.- 그동안 우리는 여러 학문 간의 융합과 통합을 외치면서도 예술과 인문학에만 교양이라는 명패를 달아 준 건 아닐까요? 그동안 교양으로서의 과학은 인문학이나 예술, 사회학들과 평등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과학과 인문학, 예술의 융합을 부르짖으려면 동일선상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과학도 교양입니다.


과학은 교양입니다.


제가 브런치에 쓰는 '과학 글'이 여러분에게 소소한 교양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전문적인 과학 논문을 곁들이기보다는, 과학이 우리네 삶을 색다르게 인식하는 안경이 될 수 있는 글쓰기를 하려고 합니다. 팍팍한 삶, 비상식적인 일들로 찌든 사회 속에서, 과학은 시중의 어설픈 '계발서'보다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위로를 줄 수 있진 않을까요? 드넓은 우주, 생동감 넘치는 자연과 경이로운 생명을 생각해 보세요. 설레지 않나요?


한 때는 과학을 좋아했던, 지금도 과학을 좋아하는,
그리고 앞으로 과학을 좋아할 사람들이 제 글과 함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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