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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구아빠 Nov 06. 2021

시월아 살아라 (치즈냥 임보기록)

1. 만나다 - 2021년 10월 10일


임보(*임시보호) 생활 3주 차에 글을 쓴다. 돌이켜보니 겁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 순간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언제나 직감을 믿으면 된다.


시월임에도 따뜻한 날이었다. 제주에서 친구가 올라와 함께 밥을 먹고 합정 콜마인에서 커피를 시켰다. 커피가 내려지기도 전에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간 것이 내 인생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선택이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콜마인은 회사 근처 카페였는데 평소 보지 못했던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머리가 긴 아저씨와 염색한 아저씨 둘이 새끼 고양이를 두고 어쩔 줄 몰라했다. 얼굴에는 점인지 흙인지 모를 것들이 묻어 있고 눈을 뜨지 못하는 치즈 냥이였다. 태어난 지 기껏해야 1~2주 정도. 어쩌다가 저 상태로 방치됐을지 생각했다.


눈도 못 뜨는 새끼 고양이는 차도 앞에서 삐약삐약 거리며 걸어 다녔다. 언제 치여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아이는 계속 차도로 향했다. 눈이 안보이니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는 건 본능일까. 염색한 아저씨가 손에 아이를 잡은 사이 머리 긴 아저씨가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줬다. 살살 닦아주니 한쪽 눈이 부은 채로 떠졌다. 그걸 보고 신난 머리 긴 아저씨. 고양이에 진심이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담배를 다 피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유심히 아이를 보고 있으니, 머리 긴 아저씨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느냐 물었다. 아저씨들은 합주 일정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했다.


새끼 고양이 똥꼬에는 나오다 끊긴 똥이, 얼굴은 분비물이 굳어 까맣게 딱지가 앉았다. 살고 싶은지 입으로는 삐약삐약 소리를 몸에 맞지 않게 크게 낸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어미는 아이를 버렸다. 게다가 오후의 비 소식과 내일부터는 영하권이라는 기상청의 뉴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됐다. 몽구 생각이 가득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구출된 이후 3년째 나와 희원 곁에서 함께하는 우리 집 몽구. 그때 몽구도 이렇게 구해지지 못했다면, 길에서 죽었겠지. 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의를 구하기보단 결심을 얻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럽게 마주된 상황에서 희원도 나도 망설였다.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사는 집, 몽구가 받을 스트레스, 그리고 예상되는 병원비와 지출들.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제가 송금해드릴게요."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에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는지 머리 긴 아저씨가 지원을 이야기했고, 나는 순간 망설이는 내 모습과 그것이 돈에 대한 부담으로 비치는 것이 싫었다.


"아뇨. 지금 돈은 문제가 아니고, 제가 데려갈게요. 혹시 제가 이상한 사람인지 모르니 연락처랑 저희 집 고양이 인스타그램 보여드릴게요."


아, 비겁하게도 나는 이상한 변명을 늘어트리며 연락처를 교환하고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고양이를 학대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구차한 이유를 대며 혹시 모를 병원비를 걱정했다. 희원에게 데려간다 연락 후 로봇처럼 움직였다. 더 이상 망설이는 건 스스로 쪽팔려서 싫었다. 콜마인에 아이를 데려와 근석과 은지에게 보여줬다. 담배 피우러 나간 애가 고양이를 데려오니 애들은 어리둥절했다.


담배 피우러 나오기 전 주문한 커피는 한 입도 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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