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동굴
소녀는 잘 살았어요.
아니, 잘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차곡차곡 모이는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일을 잘한다고 사람들의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다들 소녀에게 똑똑하게 잘 산다고 했어요.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는 소녀의 또래 친구들은 소녀를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그런 소녀에게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건 바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평생 사는 걸까?'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소녀의 삶에서 빠져있는 기분이었어요.
소녀의 마을 근처에는 지혜로운 코끼리들이 산다는 코끼리 동굴이 있었어요.
어느 날 소녀는 깊은 생각에 빠져 걷다가, 코끼리 동굴까지 걷고 말았어요.
소녀는 한 코끼리와 마주쳤어요.
"코끼리야, 여기서 뭘 하고 있니?"
"보다시피 말뚝에 매여있지. 넌 뭘 하고 있니 소녀야?"
"나는 답을 찾고 있어. 내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한 답.
다들 나보고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난 잘 살고 있지 않은걸.
코끼리야, 넌 답을 알고 있니?"
"꿈을 숨기고 사는 소녀야,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니.
너에게는 내일에의 희망이 없구나.
<꿈을 좇는 자들의 마을>에 찾아가 보는 게 어때?
그곳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라던 걸."
"난 떠날 수 없어.
이 마을엔 7년 동안 이룬 내 모든 것들이 있으니까.
좋은 일자리도 있고 돈도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고 있어.
코끼리야, 너야말로 왜 말뚝에 매여있니?
넌 엄청나게 크고 힘도 세잖아."
"나는 아기 코끼리일 때부터 말뚝에 묶여있었어.
어렸을 때 난 밤낮으로 말뚝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말뚝은 단단해서 빠지지 않았지.
어느 날부터 난 말뚝에서 벗어나는 걸 포기했어.
여기 있으면 밥을 주는 사람도 있고 춥지 않으니까 그리 나쁜 생활도 아니었거든."
"지금의 넌 말뚝을 뽑아버릴 충분한 힘이 있잖아.
지금이라도 뽑아버리는 건 어때?"
"나도 이제는 이 말뚝을 뽑아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지만 새로운 말뚝이 생겨버렸어."
코끼리는 소녀에게 불룩해진 배를 보여주었어요.
"내게는 곧 아기 코끼리가 태어날 거야."
"아기 코끼리와 함께 떠나면 되잖아?"
"맞아. 새로운 말뚝도 뽑아버리고 아기 코끼리와 함께 떠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여기서는 아기 코끼리를 안락하게 키울 수 있어.
이제 이곳에 너무 익숙해져서 밖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난 여기 매여있는 것을 선택했어."
소녀는 코끼리의 대답이 실망스러웠어요.
코끼리가 비겁하게 느껴졌어요.
등을 돌려 돌아가는 소녀의 뒤로 코끼리가 소리쳤어요.
"소녀야, 혹시 마을을 떠나게 되면 내 친구 코끼리를 만나봐.
내게는 여기서 같이 살던 친구 코끼리가 있었어.
그 친구는 어느 날 말뚝을 뽑고 바다를 보러 떠났지.
네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래,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