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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Park Mar 07. 2019

나는 장전된 총 I, a Loaded Gun

에밀리 디킨슨 

1.  나는 장전된 총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사하라 사막에서 세상의 절반은 하늘이 드리워지고 나머지 절반은 끝도 없는 모래인 그런 땅에 하늘 가득 총총한 별들을 보며 누워 자는 상상이라든가, 북유럽 라플란드에 가서 북극의 빛, 오로라를 보는 상상이라든가, 저 아래 세상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구름보다 높은 산정상에 서서 발 밑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 까마득한 곳들에 가보고 글을 쓴 이들의 책을 읽고 혹은 영상들을 보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을 능히 상상했었다. 아마 내가 독하고 고집불통에 뭐든 내 맘대로 하는 여자애였다면, 애써 번 돈을 공부하는데 쓰지 않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남들이 책에 쓴 것을 다 보러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감히 여자애가!하는 부모님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해외여행이 갓 자유화 되어서 갈 수 있었던, 그러나 너무도 넓고 무서워 보이던 세상을 마구 휘젓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 통금 시간은 밤 9시였고, 연락도 없이 밤 9시가 넘고 집에 들어간다는 일은 20대 내내 존재하지 않았다. 술 한 잔 마시지 않는 4대째 개신교 집안에서는 뒤풀이 모임 같은 건 변명이 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내 작은 방안을 끝도 없이 이리저리 걸으며 난 남들이 쓴 세상을 상상했다. 때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불이 지펴지는 것 같아서 온 밤을 다 새고 내 방 창문이 새벽 햇빛으로 발갛게 물들 때까지 걷고 또 걸어 다리가 아파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었다. 그 좁은 방안에서. 내 방에서 너무 걷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이만큼 우스운 일도 어디 있을 까만, 정말로 그랬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내 에너지를 내가 어떻게 소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보수적이기 이를 때 없는 빅토리아 시대 미국 동부의 교육자 집안이자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온 청교도 신자의 후손인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집안 딸답게 조용히 기품 있게 부모의 눈 밖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종거리며 살다가, 결국 남은 인생의 26년은 자기 집 밖으로 거의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산 여자 시인의 시를 만났다. 그녀가 그러더라. “나는 황야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 나는 바다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 하지만 난 야생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 파도가 어떠한지 알아요.” 에밀리 디킨슨은 ‘앰허스트의 아가씨(the Belle of Amherst),’ ‘하얀 옷을 입은 여인(the Woman in White)’ 혹은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a New England Mystic)’라고 불리는 19세기 미국의 시인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아버지는 과묵하고 고압적인 법률가로, 일로 집을 비울 때면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에밀리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고, 책을 많이 사주기는 했으나 어떤 책들은 여자가 읽으면 “머릿속을 헤집는다 (joggle the mind)“라며 라며 읽기를 금하던, 시인에 따르면, “순수하고 끔찍한(pure and terrible)” 가부장이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고압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잘 교육받은 딸로 자라, 서로가 서로의 집 사정을 빤히 잘하는 작은 동부의 마을의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신이라도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 은둔을 택한 케이스이다. 1869년경부터 자신의 집인 홈스테드( Homstead)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오빠의 집 에버그린(The Evergreen)의 반경 내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187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줄곧 흰 옷만 입고 지냈다고도 한다. 살아생전 발표한 글도 10편의 시와 한 통의 편지 외엔 없었으나, 죽은 후 그녀의 방에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발견된 시는 근 1800편에 가깝다. 마치 죽은 후 시들이 발표되기를 소망한 사람처럼, 에밀리는 자신의 시를 고르고 정리해두고 죽었다.  

  왜 살아 생전 시를 발표하지 못했냐고? 당시 시를 쓰는 작법과는 크게 다른 형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시를 썼는데, 이런 파격적인 시가 받아들여 지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여자라서 더더욱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당대에 여성 작가들 중에 여자 이름으로 글을 쓰는 이는 외려 전 세대 영국에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정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외려 빅토리아 시대에 접어들면 더욱더 가정 내 여성의 의무와 미덕 등등의 가치들이 엄격해지면서, 여성들의 입지는 아주 좁았다. 당시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 사실은 여자라는 사실이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가정교사와 귀족 주인의 막장 애정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을 써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커리어 벨(Currer Bell)이 사실은 여자인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가 쓴 남자 필명이라는 게 막 밝혀졌던 시대였다. 남자 행세를 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 힘든 시절이었다. 여자가 쓴 글들은 역시 논리가 부족하다, 혹은 글쓰기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남자 일색인 편집자와 비평가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함부로 폄훼를 하던 시대이고 했다. 오로지 끝까지 남자 필명을 고수했던 조지 엘리엇만이 그 특유의 건조하고 논리적인 문체와 방대한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으로, 남자 지식인들이 여자 작가라는 것이 알려 졌음에도 경탄을 하며 극찬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 노릇도 하고, (명목상의 편집장인 남자는 따로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신문의 편집장 역할까지 거침없이 해냈던, 조지 엘리엇과 달리 에밀리 디킨슨은 성정이 예민하고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모든 여자가 조지 엘리엇처럼 거침없을 수가 없었다. 아니, 보다 많은 여자들이 그렇지 못했다. 그릇이 달랐다. 

하지만 예민하고 내성적이라고 해서, 불길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두어 지고 억눌려진 에너지는 응축되었다가 터지는 법이다. 육체가 갇히면 상상력이 비상한 정신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 질주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디킨슨은 이렇게 읊었다. 


환희는 내륙의 영혼이

바다로 가는 것이지,

집들을 지나쳐 – 해안선을 지나쳐

깊은 영원 속으로 그렇게 –

선원이 어찌 알겠어?

산에 둘러싸여 키워진 우리가 

육지에서 처음 발을 떼고 

첫 10 리만큼 가서 느끼는

거룩한 도취감을.

Exultation is the going

Of an inland soul to sea,

Past the houses – past the headlands –

Into deep Eternity –

Bred as we, among the mountains,

Can the sailor understand

The divine intoxication

Of the first league

 out from land?


 한국어로 “exultation’은 그냥 ‘환희’로 번역되었지만, 그 느낌은 많이 다르다. 번역이란 우비를 쓰고 샤워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냥 ‘기쁨’이나 ‘환희’라는 단어는 원어가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지 못한다. ‘joy’가 그냥 ‘기쁨’이고 ‘rejoice’는 동사지만 왠지 기뻐 춤추며 노래하는 것 같은 기쁨이라면, ‘exultation’은 한껏 고무되고 사방으로 기쁨을 분출하며 터져 나가는 그런 기쁨이다. 해방을 맞듯 터져 나오는 이 기쁨은 내륙에 오래 갇혔던 영혼이 드디어 탁 트인 광활한 바다를 맞으러 가는 일이라고 새기면 시인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 어찌 알겠는가,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세계를 정복하고, 지구를 탐험한다고 돌아다닐 수 있던 남자들이, 집 밖 동네에도 나가지 말라고 구속을 받고 사는 여자의 심정을. 집 밖으로 나간다 한들 일거수 일투족 지켜보며 수근덕거리며 갇혀서 남아도는 에너지를 만인(萬人)의 만사(萬事)에 대한 참견과 관심으로 소비라는 작은 공동체의 시선에 갇히는 삶을. 그러느니 스스로 가두고 앉아, 오로지 상상의 나래만 펼쳐 질주해서 달려가보는 바다를, 그 폭발하는 환희를, 허구헌날 바다에 나가보는 이들이 어찌 알겠냐고. 

 세상 혹은 욕망을 부인하고 물러나 은둔 속에 들어 앉는 것을 영어로는 renunciation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renunciation이 체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외려 이렇게 말한다. “포기란, 꿰뚫는 미덕이지 (renunciation is a piercing virtue). ” 원하는 것을 앞에 두고 구석으로 물러나 앉는 그 마음은 전신이 꿰뚫리는 것 같은 고통을 맛보는 ‘미덕’이라는 뜻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는 원하는 것을 보는 눈을 ‘꺼버린다 (put out the eyes)’라고 말한다. 글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그걸 세상에 내보이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삶은, 수용만 가능하고 발산을 할 수 없는 더듬이를 지닌 인생과 같다. 글을 쓰고 읽히고 싶은 욕망으로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발표하지만 못할 글을 쓸 때마다, 아마 자신의 욕망으로 그대로 꼬챙이에 꿰어져 태워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으리라 본다. 이런 아픔을 품고 세상의 구석에 들어앉은 삶이란 어떠했을까.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의 싯귀처럼, 그런 시인의 눈이 있다면, 작은 정원에서도 능히 시인은 우주를 건져 올렸다. 상상해보라. 지금보다 모든 것이 느렸던 삶.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면 도착하는 데 최소 사나흘, 답장을 받는데 또 사나흘. 지금처럼 한 통의 문자로 상대의 반응을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 상대를 가늠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닐 때에, 작은 우물 같은 세계에 갇힌 사람이 밖으로 글을 적어 보내고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는 매일의 삶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기다릴 때마다, 그 사람은 어떤 소망을 알 수 없는 미래로 날려보내며 시간을 건너 돌아올 답장을 기다렸을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상대의 응답의 오기 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때로 영겁을 경험하지 않나. 그러나, 바로바로 돌아오는 응답은 어쩌면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에 가늠줄을 내리기에는 너무 얕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여러 날 저 멀리 시간과 공간을 지나 도달할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자면, 지독히도 깊은 기대로 끝도 없는 가늠줄을 내리고 기다리다가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시간을 헤아리다 그렇게 탄식하지 않겠는가. “영원은 - 지금으로 이루어져 있어 --/ 다른 시간이 아니야. (Forever – is composed of Nows – / ‘Tis not a different time –)." 보세요. 나는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을 차곡차곡 접어서 쌓고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이 될지라도, 내겐 늘 지금이라는 순간으로 내 마음속에 접어 넣어요, 그런 갈망으로 시간을 견디는 마음이랄까. 

 세상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시인은 자신이 죽은 후에나 자신의 메시지를 읽게 될 당신에게 속삭였다. “난 노바디예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 당신도 노바디예요? / 그러면 우린 노바디 한 쌍이군요! – 쉿, 말하지 마세요 / 저들이 알면, 우리를 없애 버릴 거예요. (I'm nobody! Who are you? / Are you nobody, too? / Then there's a pair of us—don't tell!/ They'd banish us, you know.)” 때로는 숨죽이고 내다보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으면, 시인은 자신이 장전된 총이라 상상을 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 전투와 고통과 죽음과 슬픔으로 얼룩진 세상을 겪었던 터였다. 총의 총구를 세상을 보는 노란 눈 (yellow eye)이라고 하고 그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은 단호한 엄지 (an emphatic thumb)라 부르며, 자신은 세상구석에 놓여진 장전된 총이라고 했다.  “내 삶은 서 있었어 – 장전된 총으로 - / 구석에 –  그러다 어느 날 /  주인이 지나가다 – 알아보고는 / 날 집어 들고 갔지 – (My Life had stood — a Loaded Gun — / In Corners — till a Day / The Owner passed — identified — / And carried Me away —)” 장전된 총이나 구석에 버려져서 아무도 써주지 않는 기분은 어떨까. 세상에 능히 놓고 겨누어도 뒤지지 않는  예리한 지능과 단호한 의지가 있으나, 구석에 장전된 채로 놓여진 기분. 능력은 있으나 세상에 

쓰임받을 데가 없는 사람으로 사는 기분. 그게, 그 누구보다 기민한 머리 (“노란 눈”)와 벼리고 

벼린 의지 (“단호한 엄지”)를 가지고도 제발 누가 나를 들고가서 써줘 하는 열망으로 시름시름 앓아야 하는 기분은 어떨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글들을 쓰고 또 쓰며 수십 년을 기다리는 열망은 어떨까 싶다. 

 열망을 삭히는 매일 매일은 그렇다고 음울하고 어두웠냐고. 아니, 터질 곳 없는 불꽃을 수십 년 동안 품고 조금씩 조금씩 글을 써서 풀어내며 그 불기를 조금씩 죽여가는 사는 삶이라는 게 있다. 슬프지. 그러나, 사실 어찌 보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삶을 사는 것도 맞지 않은가. 좁은 삶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에너지와 비상한 재능을 가진 여자는, 그리하여 살아간다는 건 하루하루 조금씩 내면에 품은 용광로의 눈금을 한 단계씩 낮추며 사위어 들어가는 일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렇게 열기를 질금질금 열기를 풀어낼 수 있는 통로였다. 

 불꽃을 천천히 죽이려면 말이지, 작고 낮은 것들로 눈을 낮추어서 그것들을 톺아보며 헤아리면 된다. 저 멀리 높고 원대한 산과 아득한 바다를 열망하던 눈빛이 가장 작고 아름다운 곳에 머물 때, 비로소 후아아~하고 숨을 내쉬며 열기를 내뱉을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시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슬 한 방울은 그걸로 족해 / 잎사귀 하나를 채우고는 / 느끼지 ‘운명이란 어찌나 광활한지!’ / 삶이란 어찌 사소한지! (A DEW sufficed itself /  And satisfied a leaf, / And felt, “how vast a destiny! / How trivial is life!)”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다는 것, 큰 소리 고 전쟁을 벌이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남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작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며 버티며 기다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주억거리게 된다. “희망이란 날개가 달려서 / 영혼 속에 걸터앉아 / 말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 결코 멈추지 않는 것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That perches in the soul /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 And never stops at all) 그렇게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구석에서 그 아무로 몰라준다고 해도, 외롭게 혼자 자신을 바투어 가며 써내려간 그 모든 시를 두고, 삶의 의미를 건져낸다. 


상한 가슴 하나를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로빈 새 한 마리를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죽은 후에야 읽힐 수 있을 거란 알았던 그녀의 시는 과연 사후에 묶여져 출판되었고, 출판된 당시에 그 진가를 몰랐다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녀가 그려낸 개인의 의식 – 사회와 맞서고 신과 대면하는 개인의 고유성으로 인해, 미국 문화의 르네상스에 얼마나 획기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재평가를 받으며 명작의 대열에 올랐다. 그녀가 접촉하던 소수의 가족 친지들 중 한 명이었던 조카 마사(Martha)는 이후 에밀리 디킨슨의 묘비를 다시 세웠다. “Called Back”이라는 문구를 새겨서. Call back은 ‘소환하다’는 뜻이다. 고모의 시가 다시 재평가를 받아 다시 소환될 거라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그렇게 새겨넣었고, 과연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소환되었다. 원래 명작의 가치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로 소환되어서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는 데에 있는 것처럼, 그녀의 시들은 끊임없이 소환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속삭여준다. 

 21세기초 한국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소환하는 의미는, 여자가 글을 쓰기 힘들었던 시대에  갇힌 삶 속에서 스스로를 바투며 사회가 부여하는 개인의 가치를 부인했던 여성의 삶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녀가 썼듯이 우리도 써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되거나 강요되는 역할과 가치와 선택권을 가지고 마주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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