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소하게 화제가 된 기사가 있다 (링크 참조: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1013/103375868/1). 정재승 교수님께서 주도하시는 KAIST 융합인재학부의 탄생에 대한 기사였다. 페북에서 이와 관련한 의견을 여러 개 보았는데 나도 내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융합인재학부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a) ABCD 학점이 없고 b) PBL 위주의 학습을 하며 c) 책을 100권을 읽고 감상평을 쓰는 게 필수라는 점인 것 같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우려 섞인 반응이 더 보인 것 같은데 나는 사실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리고 잘 정착만 한다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독후감에 초점을 맞추시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프로젝트 기반형 학습(PBL)과 역량 중심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습과학과 교육공학 분야에서는 project-based learning과 competency-based learning이 중요한 화두가 된 지 꽤 됐기 때문에 이러한 담론들이 실제 교육현장 그것도 카이스트 같은 곳에서 실현되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러 기술 발달과 환경적 변화로 인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번 실험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비록 종합대학은 아니지만 카이스트가 이런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재승 교수님의 원 소속 학과인 바이오및뇌공학과의 초창기 졸업생인데 당시 학과 자체가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다. 일단 교수님들께서 다양한 분야 소속이셨고, 커리큘럼 자체도 바이오와 뇌과학뿐 아니라 전자, 전산, 기계 관련 다양한 학문을 다루었었다. 보통 학생들은 기본 뼈대가 되는 필수과목들을 배우고 각자 생각하는 진로에 따라 세부과목들을 수강하는 테크를 탔다. 나는 1기 학번보다도 한 학번 위인데 졸업은 2기와 같이 한 깍두기 같은 존재였는데 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선배가 없어서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도 대다수 친구들이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듯 스터디를 조직해서 하고 과방에서 살면서 과제를 하고 대학교 저학년 때부터 랩에 소속되어 연구를 배워가며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학문을 배웠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커리큘럼의 구조가 학생들과 함께 변화하는 초창기에는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어렵다. 실제로 다른 과에 비해서 좀 끈끈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각자 자기 분야에서 한몫하고 있는 친구/후배들을 보면 참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새로운 융합학문을 공부하는 학습환경적인 요소가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적절한 scaffolding이 주어진다면 융합인재학부의 학습환경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고유한 학습적 어포던스들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사실 바이오및뇌공학과 외에도 STS, 경영학, 경제학, 문화기술, Information Science, HCI 등 이공계와 타 학문에 걸쳐진 다양한 학과들이 존재하고 많은 융합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시도가 성공적인지는 내가 알 수 없으나 재미있는 시도들이 많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학부 때 제일 재밌게 들었던 전공과목 두 개를 들자면 Science Communication and Leadership과 바이오융합프로젝트라는 과목인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책 100권과 같은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PBL 그 자체이다. 글 쓰는 게 많았던 리더십 과목은 나처럼 공돌이스럽지 않은 학생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전공과목이었고 바이오융합프로젝트라는 과목은 처음 문제 설정부터 해결까지 그룹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우리 분야에서 다루는 PBL의 이점과 학습이론적 함의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융합을 위해서는 각자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나도 여기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성이 학부에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학부 때 필수로 배워야 하는 스킬들과 지식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위해 필수과목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융합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협업이라는 측면에서의 융합을 위해 좀 더 심도 깊은 지식들을 체득하는 사람들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학부에서는 융합을 위해 필요로 하는 지식들을 얕지만 두루두루 배우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융합학문을 학부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자신만의 전문성을 깊이 파고든 나의 동료들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두루두루 배우다가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도가 엄청 새로운 것도 아니다.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학교의 경우에도 Pass/Fail로 성적 받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학생들이 스스로의 커리큘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만일 카이스트 전 학사과정이 저렇게 바뀐다면 또 그것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소수의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이러한 프로그램이 생기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학부 교육의 힘은 사고의 틀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학부 때 배운 바이오 관련 지식들은 도통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학부에서 얻은 것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정말 똑똑하고 열심인 멋진 친구들이었다. 비록 학부 때부터 나의 전문성을 쌓은 것은 아니지만 학제적인 환경을 거치면서 체득한 것들이 분명히 내 속에 존재하고 그것들이 석사, 박사 과정을 통해 쌓은 학습과학자로서의 나의 전문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융합인재학부의 탄생을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