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시간으로는 이미 지났지만 미국 시간으로는 아직 엄마의 생신이다. 아마 이 글을 마칠 때 쯤이면 미국에서도 엄마의 생신이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올해도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개인적으로 외국에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 같다. 내가 중년이 되고 부모님께서 노년이 되시면서 그런 헤어짐에서 오는 안타까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따금씩 진하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올여름 미국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난 학업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학교는 마닐라에 부모님은 필리핀 남쪽 민다나오섬 다바오에 계시다 보니 방학때만 부모님을 볼수 있었다. 나는 늘 헤어짐이 아쉬었다. 막상 학교에 가면 잘 지내지만 방학 때 오면 흘러가는 시간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방학이 한 반 정도 지나가면 그때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아 이제 며칠 남았구나, 아 이제 며칠 남았구나 이렇게 말이다.
근데 지금도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땐 한참 남았던 것 같은 시간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리고 헤어짐의 시간이 온다. 함께 부대끼며 산다는 건 말 그대로 부대낄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대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고 맞춰져 갈때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고 사랑도 더 커진다. 이번에도 부대끼는 시간을 겪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현실이 달라서 생기는 아쉬움 내지는 속상함이라고나 할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진 속의 모습처럼 엄마에게 있어 나는 엄마의 어린 아들일 수 밖에 없고, 머리가 커져버릴 대로 커 버린 나는 또 나의 자아가 무척이나 확고한데서 오는 괴리는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고 믿는다. 사랑이 바탕이기에 굉장히 행복한 시간들을 한번 더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기회가 있음이 너무 감사했다.
요즘들어 내 나이 때의 부모님은 어떠셨을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선명히 기억하는 모습 속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가 됐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부모님 같은 울타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충분히 되어주고 있는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아직 젊다고는 하지만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오는 여러 신호들이 몸과 마음 곳곳에서 들려온다. 가볍게 보던 것들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예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게 된다. 부모님도 그러셨을 텐데 그 땐 어떤 기분이셨을지 궁금하고 또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지금 못 느끼는 것들은 또 내가 훌쩍 더 큰 다음에 아마 느끼게 될 것이다. 엄마 생신 축하 글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맺어야 할 지를 잘 모르겠다.
사랑합니다, 엄마. 서로의 생각과 모습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사랑은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계셔서 여전히 까불 수 있고 그래도 이제는 엄마 아빠의 삶의 무게를 조금은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그늘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래오래 아빠와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P.S. 이번에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내가 보통 찍사라서 엄마랑 찍은 사진이 생각보다 없다. 내년에는 필리핀을 가려고 하는데 엄마 아빠랑 사진을 많이 찍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