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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웅 Jan 20. 2024

신앙에 대한 고민

페이스북에 6년전 다른 분의 글을 공유하면서 쓴 포스팅이 있었는데 지금도 유효한 것 같아 공유해본다.


1. 우리 분야에서 통용되는 연구방법론 중에 Design-based Research라는 것이 있다. 모든 confouding variable들을 제거해서 순수하게 특정 variable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실험등과 다르게, Design-based Research에서는 실생활에 특정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적용하여 그것이 적용된 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맥락 정보들을 감안해서 이론을 적립하고 수정해 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연구 결과를 이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고 적용하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론들을 정교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론은 다양한 맥락적 요소들이 존재하는 복잡한 세상에서 정교함을 위해 단순화된 이론을 실질적인 교육환경에 적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하였다. 이상적인 환경에서 완벽히 적용되는 이론을 논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깔끔하지 않다는 것이다.


2. 단순화된 믿음과 교리는 그 자체로 큰 힘을 가진다. 너무나 명확하고 믿기도 쉽기 때문이다. 안 믿어지는 것이 있다면 내가 믿음이 없음을 탓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고민이라는 요소가 빠져버리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간편화된 신앙은 우리에게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들을 앗아가고 주변 상황들을 쉽게 판단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교회는 완벽하지만, 현재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다. 어찌보면 고민이 당연하지만 "우리"가 이루는 교회가 완벽하다는 생각에 고민은 불경스러운 것이 된다. 


3. 이제 반 정도가 지난 나의 30대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신앙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과정 가운데 결론이 내려진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나에게 있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을 읽어보고 나 스스로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 없음"이라고 누군가는 질책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의심하고 고민하는 과정들이 나온다. 엄청난 선지자라는 침례자 요한에게조차 그가 감옥에 갇혔던 극단적인 상황 가운데 예수를 의심하고 확신을 구하는 과정이 있었다.


4.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은 공감을 했다. 머릿 속에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지금 와서 앤서니 케니에게 이입되는 감정은 자신의 고백 이후 그가 걸어간 경계인의 삶에 대한 경의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확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에 확신을 강제함으로써 발생한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그래서인지 경계인, 회색인, 주변인, 그 어떤 용어로 불리건 그들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


경계에 서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컨텍스트가 교회일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역사의 진보는 경계인의 희생을 딛고 나왔다는 점에서 교회나 사회는 차이가 없다. 그 점에서 경계에 선 사람들은 전위이다. 그 경계가 유신론과 무신론의 경계이건, 종교간의 경계이건.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견해차이에 대한 경계이건 말이다. 우리가 주의할 이들은 불가지론으로 고뇌하는 이들이기 보다는 거침 없이 확신을 선포하는 이들이다.


오늘 교회의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경계에 서서 고민하는 것의 가치를 외면하는 데서 나왔다. 고민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제도 교회는 간편하게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니 거기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떠돌 수밖에 없다. 창조에 대한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 동성애에 대한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 성서의 권위에 대한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 누구도 우리에게 대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신앙은 확신을 되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끝없는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선 자리를 확인하며 점검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교회는 너무 안전한 곳이 되어 버렸다. 경계에 선 자들이 진입하기에는 보안 검색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 이 포스팅에서 인용된 글은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 계신 최종원 교수님께서 6년 전에 쓰신 페이스북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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