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학계의 상위 0.5%라는 어떤 과학자의 육아 이야기가 나온 기사를 읽었다. 일과 가정은 양립 아닌 하나라는 말이 공감이 가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몇 있었다. 좋은 케이스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사이지만 슈퍼우먼의 케이스를 보여주면서 “너희는 노력이 부족해서 안되는 것이지 사실은 가능한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과연 이런 케이스를 전하는 것이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저출생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부부 학자로서 나는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고 학자로서의 삶의 궤적에서 각자가 세운 우선순위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확고해 보이는 우선순위라 할 지라도 흔들리고 고민하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미국 중부에 있는 한 주의 시골 마을에 산다.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와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두시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말 거의 중간에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 사실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학계에서는 굉장히 이상적인 케이스지만 아쉬운 점이 없을 수는 없다. 각자의 직장이 있는 도시들은 한인들이 엄청 많은 도시는 아니지만 적당한 도시규모와 한인사회, 좋은 학군, 적당한 물가를 가지고 있는 살기 제법 괜찮은 도시들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한쪽으로 모는게 더 나은 선택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테뉴어 트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조교수들이었고 언제든지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마을에 정착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동양인이 거의 없는 시골마을에서 엄청 잘 적응을 했고 나름 넷이 똘똘 뭉쳐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멈추지는 않는다. 일단 재택을 엄청 많이 하는데 이럴거였으면 도시에 사는게 낫지 않았을까? 이제 2년 후면 아들은 고등학교에 갈텐데 이 곳이 아이들 교육에 최선의 선택일까? 지금 다니는 한인교회는 오십분 걸리는데 어떻게 해야 좀 더 교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커리어적으로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고 쉽게 답이 안 나오는 대화들을 부부 사이에 하면서 살고 있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의 선은 굉장히 지저분하며 모든 걸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각자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하게 되는 고민들도 다르다. 가령 우리 애들은 굉장히 무난하고 손이 많이 안 가는 편인데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는 각자가 써가는 이야기가 다른데 정말 여러모로 아웃라이어인 분 하나의 이야기로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미친듯한 커리어를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굉장히 복받은 경우다. 졸업하자마자 교수 자리를 구했고 하고 싶은 연구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직장과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중간에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을 때가 있었지만 다행히 금세 합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커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출퇴근을 매일 할 필요도 없이 집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들이 없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니 추억이지만, 만2세와 만 0세를 육아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부부가 동시에 박사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결혼하고 나서는 별로 싸울 일이 없었는데 그 때는 참 많았었다. 그래도 주말에 함께 육아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 학생 부부를 위한 학교의 적극적인 어린이집 지원, 교육학계 특유의 가정친화적인 분위기 등으로 인해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지금도 어려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과 가정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말씀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 부부 둘 다 학자의 삶을 사는 게 가능하다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은 길이라고도 말해줄 것이다. 미리 세워놓은 우선순위가 흔들릴 정도의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도 말할 것이다. 때로는 엇박자가 날 때도 있고, 포기해야 할 때도 있으며, 그리고 서로 양보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고도 말하고 싶다. 정말 하나도 당연히 오는 것은 없고 고민도 끝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간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격려도 할 것이다. 결국 답은 각자가 내리는 것이고 거기에 정답은 없으며 내가 생각하는 롤모델은 없을지언정 그 길을 함께 가고 고민하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다고 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혼자가는 길이 아니니 모든게 괜찮을 거라고 위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