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힘들게 살고 싶은 나를 위해
나는 메일함을 자주 확인하지 않는다. 직장을 그만두고 난 이후로는 메일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할 일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오랜만에 들어가 본 메일함은 각종 미사여구로 점철된 제목의 홍보성 메일의 향연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가족사진’. 엄마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메일을 보내시곤 한다.
엄마가 보낸 메일을 클릭해 봤다. 대용량 파일 몇 개가 첨부되어 있었다. 첨부 파일에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부터 막둥이 동생의 전역까지, 십 년이 넘는 세월이 담긴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폴더 하나하나, 엄마가 기록해 놓은 날짜와 장소였다. ‘XX년 XX월 XX일, 예쁜 딸과 멋진 아들’, ‘XX년 XX월 가족 강원도 여행’. ‘XX년 XX월 XX일, 아들은 휴가 복귀 딸은 출근’. 가끔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엄마의 꼼꼼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옛날 사진을 접하면 역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학창 시절의 추억이다. 가장 고됐지만서도 한편 오롯이 미래의 희망으로만 가득했던, 한때는 나였지만 이젠 내가 아닌 그때의 내 모습이 다시금 궁금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닌 졸업식 날 찍은 엄마와 나의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할머니 이때 정말 젊었지?”
엄마가 할머니 집 벽에 걸린 할머니의 옛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이랑 똑같은데.”
나의 눈에 어른들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나도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의 나이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자주 잊기 때문인 걸까. 그러나 엄마와 내가 나란히 찍은 졸업 사진을 보니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 있다. “와, 엄마 진짜 젊다.” 엄마는 가끔 나와 동생을 대신해 나이를 먹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나이 드는 게 아깝다고. 나는 그 아깝다는 표현을 안타깝다는 표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오늘 엄마와 나의 졸업 사진을 본 나는 비로소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나이 드시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언가 아깝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아낀다. 어렵게 번 돈이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렇고 좋아하는 물건이 그렇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30년 남짓의 간극. 그 타고난 간극은 줄일 수 없다. 순리대로라면 적어도 우리는 그 간극에 맞춰 순차적으로 운명적 이별을 맞이하리라.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까움을 느끼는 방법뿐일지 모른다. 그 한정됨을 알고 귀히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음미하고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