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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복 Nov 14. 2024

조언은 요청받았을 때만

갑자기, 거울치료

다니던 수영장이 내부 수리차 휴관 중이다. 아쉬운 마음에 OO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을 찾아갔다. 관내 시민 대비 50퍼센트 가산된 요금을 내야 했지만 그래도 저렴한 금액이었다. 차로 15분 이내인 데다가 수영장이 1층이라 커다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참 좋았다. 결정적으로 사람도 적어서 첫 방문 때에는 단 3명과 레인을 나눠 썼을 정도였다.


좋았던 기억을 안고 며칠 전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다음날이 휴관이라서인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초급 레인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반환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와중에 중급 레인에 있는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렇게 속도를 내지 말고 천천히 해봐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선의로 그런 것이려니 하고 “아, 네. 감사합니다.”라고 적당히 넘어가려는데 ”손끝도 이렇게 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저항이 심해져요. 등등" 조언이 이어졌다.


수영장에서 더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던 이유는 남과의 비교 없이, 큰 기대 없이, 오롯이 나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누군가 내가 수영하는 걸 보고 평가하고 조언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했다. 관객 없이 무대에서 혼자 연기 연습을 하고 있던 배우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심사평(그것도 누구인지 모를 심사위원이 뱉은)을 들어야 할 때의 당황스러움일까.


나는 수영을 '잘'하는 것보다 그냥 헤엄치는 자체가 좋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는 중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원하지 않은 조언을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 조언을 들은 뒤로 영 신경이 쓰였다. 그 아저씨가 내 수영을 보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혹시라도 또 피드백을 줄까 봐서. “그렇게 하니까 좀 낫지요?” 라던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봐요.” 라든지. 흥이 꺾이니 수영할 맛이 나지 않았다. 열 바퀴를 채우지 않고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그 경험이 단순히 불쾌한 기억으로만 남아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 사건은 톡톡한 거울 치료 효과가 있었다. 사실 나도 쉽게 조언을 하는 편이다. 직업의 탓일 수도 있는데 상대가 학생에만 국한되지 않는 게 문제다. 가장 만만한 대상이 가족. 남편, 부모님, 남동생, 가끔은 시댁 식구들에게 해결책이랍시고 자꾸 조언을 해댔다.


조언을 하는 심리를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옳은 것, 좋은 것의 상이 분명히 있다는 게 전제다. 나는 답을 알고 있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그 답을 내가 알려줄게 하는 마음. 그 마음은 분명 선의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가 추구했던 답이 내 답과 같다는 보장은 없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세상 쓸데없는 네 가지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꼽았다. 그 책을 읽던 당시에도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경험으로 새삼 다시 배운다. 조언은 요청받았을 때만!




여기까지 쓰고 오늘 저녁을 먹으며 이 사건에 대해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도 상대의 행동이 오지랖이라고 평했다. 글의 흐름처럼 거울치료까지가 나의 서사였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 말에 남편이 답했다.


"상대방 행동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좋게 받아주지 마. 그냥 못 들은 척하거나 딴청부리면서 넘어가. 예의 차린다고 마음에 없이 행동하면 상대는 자기 도움을 받아들인다고 착각하고 또 조언할 수도 있는 거니까. 상대가 선의로 한 행동으로 보여도 자기 기분이 나쁜데 왜 그걸 받아주고 있어?"


남편의 얘기에 생각이 다른 국면으로 뻗어간다. 그러네. 불쾌한 기억을 안고 끝내 자기 성찰이나 하고 있다니, 나도 참 나구나. 그치만 면전에서 싫은 티를 대놓고 내는 게 어디 쉽나 싶었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은,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알량한 허영심 때문에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뱉었던 게 아닐까 또 자기 성찰을 하고 있는 밤이다.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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