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쓰기의 마무리는 재개발로...
이슬아의 이스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자면 일상 생활에서 건져낸 소재가 마음에 와닿고 아름다운 글감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앉아서 일상의 무언가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드물지만 그의 방송을 들을 때만큼은 나도 머릿속에서 작가가 되곤한다.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그의 묘사력과 표현력을 들을 때면 절로 웃음이 지어지거나 감탄이 터져나오곤 한다. 그러곤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살에 와 닿는 글을 쓰고 싶다. 틈만 나면 듣고, 읽고 있다. 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교회가 3곳이나 있다. 그 중, 화단이 유난히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데 나는 교회인은 아니지만 그 교회의 화단만큼은 정말이지 사랑한다. 특히 그 화단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무화과 나무이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면 무화과가 풍성하게 열리는데 누가 따먹는지는 모르겠다.
이 무화과 나무를 볼 때면 생각나기 시작한 최근의 기억이 있다. 애인과 갔었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이다. 시칠리아에는 마치 잡초처럼 무화과 나무가 아무데나 여기저기 자라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자주 보여서 무화과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값 비싸고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은 훌륭한 과일을 익숙하게 따먹는 시칠리아 사람들을 상상하니 부러워졌다. 내게는 그런 익숙한 열매가 파란 대추였다. 그 대추 나무도 이제는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지만.
대추나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두번째 고향인 허스아파트로 가야한다. 지금은 허물어 지고 없어져버렸다. 우리 가족 살던 '라'동은 아파트 단지의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땅의 귀퉁이에는 조그만 야산이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의 소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할머니는 그 곳에 조그만 텃밭을 일궈서 돈나물도 먹고 상추도 길러 먹고 그랬다. 지금은 없어진 나의 고향 전농동에서 공수해온 대추나무 한그루를 옮겨 심은 곳이 이 곳 야산이었다. 원래 이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엄마, 순덕이 이야기해준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면 언니와 나는 달콤하면서 퍼석한 질감의 대추열매를 많이 따먹었다. 신나게 뛰어놀던 오후날의 심심한 입을 달래주던 대추나무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허스 아파트 옆의 땅에 큰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야산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재개발에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릴 때부터 나의 기억의 장소들이 자꾸만 없어지는 것을 봐 왔기 때문인 것 같다. 대추나무가 포크레인에 힘없이 부러지고 산이 통째로 갈리는 것을 보면서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다시는 저 야산을 타는 모험도, 달큼한 대추도, 초고추장을 뿌려 먹으면 맛있던 돈나물도 내 생활에서 없어져버리니까. 근데 어린 아이 답게 곧 잊어버리고 동네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 글을 쓰는 것이 길조였을까, 방금 내가 진행하는 재개발 지역 투어 승인이 떨어졌다.
가슴이 콩닥콩닥 터질 것같이 기쁘다. 세로토닌이 머리에서 터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