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Legend Magazine 이준동 국장
[솔리드]
솔리드(Solid)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하다가 21년 만에 재결합한 재미교포 정재윤, 김조한, 이준 으로 구성된 3인조 그룹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R&B’와 ‘힙합’, 그리고 ‘비트박스’ 등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많은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재윤(Jae Chong)은 솔리드의 리더이며 가수뿐만 아니라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197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과 함께 도미해 L.A에서 거주했다. 현재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에서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90년대 대한민국 R&B 음악을 선도했던 최고의 그룹 ‘솔리드’의 리더에서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거듭난 정재윤(Jae Chong)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과 음악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봤다. <편집자주>
[프로듀서 정재윤]
사운드캣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솔리드 정재윤입니다. 이렇게 사운드캣 ‘Legend 매거진’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2019년 새해를 맞는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그룹 ‘솔리드’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더불어 개인적으로 음악 프로듀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997년에 해체했던 솔리드가 지난해 다시 뭉쳐 5집 앨범으로 컴백했고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이렇게 셋이 함께 무대에 선 게 21년 만이라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솔리드 그룹 활동 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세계 각지에서 호평받은 글로벌 그룹 ‘AZIATIX’를 프로듀싱했고, 또 대만, 홍콩, 일본, 미국 등지에서 음악 프로듀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를 소개하려면 그룹 ‘솔리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은데요, 솔리드는 1990년대 초반, 국내에는 생소했던 ‘R&B’라는 장르의 음악을 처음으로 선보인 그룹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매체와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그룹으로 대한민국의 음악을 성장시킨 그룹’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시는 솔리드의 대표곡은 ‘이 밤의 끝을 잡고’, ‘천생연분’ 그리고 ‘나만의 친구’ 등이 있습니다.
솔리드의 탄생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저희에게 다가왔습니다. 저희 멤버들은 미국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같이 지낸 친구였고, 저희 셋은 대만 그룹 'LA BOYZ'의 앨범 작업을 돕기 위해 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을 하던 음반사 관계자분이 ‘세명이 그룹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라고 제안을 해주셨고 이를 계기로 저, 김조한, 그리고 이준 이렇게 세 명이 솔리드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룹 솔리드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죠.
위에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솔리드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최근 세 명이 다시 힘을 합쳐 21년 만에 뭉치게 되었고, 한국에서 앨범 발매와 공연 등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저는 솔리드를 하기 전인 1991년부터 ‘LA BOYZ’의 곡 작업을 맡았습니다. 이때부터 프리랜서로 작곡가, 프로듀서 활동을 하다가 대만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2003년 ‘LA BOYZ’의 멤버 ‘제프리 황’과 함께 ‘MACHI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부터입니다.
1990년대 초반 당시에는 대만의 음악 비즈니스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흡사 미국의 음반 시스템과도 비슷했죠. 당시 대만은 동남아시아 권에서는 미국의 할리우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드리면 쉽게 이해되실 것 같습니다.
1990년대에는 중화권 가수들은 대만에서 우선 프로듀싱을 마친 후, 동남아나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중화권 음악 산업의 메카였던 대만에서 음악 프로듀서 활동을 하면서 음반 비즈니스와 관련된 다양한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화권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고 있는 '코코 리'(Coco Lee), '바네스 우'(Vanessa Wu), '스탠리 황'(Stanley Huang) 등 중화권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함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을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건너갔던 1980년대 당시 미국의 음악 분위기는 ‘힙합’의 전성기였으며, 학교 친구들 중에는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 등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어려서부터 흑인들이나 히스패닉들 친구들과 음악을 같이 들으며 자연스럽게 미국 흑은 음악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제가 음악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12살 때 기타를 선물로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저는 ‘랜디 로즈’(Randy Rhoads)와 같은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며 하루에 6시간 이상씩 5년 넘게 기타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 정식으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 작곡과 음악 프로듀싱이라는 일을 직접 맡아 시작하게 되었죠.
이렇게 음악은 저의 일생과 지금까지 늘 함께 해왔습니다. 솔리드로 한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해체 후 음악 프로듀서라는 직업으로 대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제프리 황’(`Jeffery Huang)이었습니다. 그가 속했던 'LA BOYZ'라는 그룹의 프로듀서로서 함께 곡 작업을 했던 인연을 이어가며 2003년 제프리 황과 함께 ‘MACHI 엔터테인먼트’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제프리 황은 가장 친한 친구이며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함께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함께 해왔던 삶은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 같고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서 많이 궁금해하실 프로듀서라는 직업에 대해 잠깐 소개를 드렸으면 합니다.
‘음악 프로듀서’라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그 장·단점을 말씀드리면 가장 좋은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가진 장점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신만의 음악으로 담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른 직업이 가질 수 없는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또 각각 서로 다른 목소리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서 많은 국가를 방문하게 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 나라들의 음악과 문화를 현지에서 접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많은 장점들 중에서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내가 직접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음악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그 음악이 히트할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피할 수 없는 단점도 분명 존재하는데요, 우선 월급을 받는 일반적인 직장에 비하면 안정되고 계획된 상황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프로듀서가 프리랜서로 일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항상 크고 작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지금까지 활동하며 이루어낸 음악적 위치나 위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다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장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면서 단점을 이겨낼 자신이 있다면 이제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첫 번째, 만약 본인이 직접 작곡을 하고 음악 프로듀싱을 하고 싶다면 한두 가지 이상의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풍부한 인생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작곡을 하고 음악 프로듀싱을 하면서 한정된 공간인 스튜디오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때문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경험은 현장에서 본인만의 개성을 부각할 수 있는 ‘음악적 영감’이나 ‘음악적 감성’으로 곡에 표현됩니다.
세 번째, 항상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음악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접해야 합니다. 트렌드를 보고 ‘이런 스타일로 하자’라고 하면 이미 늦습니다. ‘반 발짝’이라도 앞서가는 타이밍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트렌드를 바꾸는 사람, 이노베이터, 파이어니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음악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야 하는 이유는 현시대는 디지털 시대로 하루하루 무섭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시대이자 국경이 이미 사라진 현시대는 음악 소비 환경이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한정된 시장에서 성과를 보고 해외로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국제 시장에 음악을 선보이고 경쟁하면서 서로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더불어 세계적인 음악이 나오기 위해서는 ‘라이프 스타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크리에이티브가 나온다고 자부합니다. 자유롭게 생활해 본 자만이 '진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줘도 따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짜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진짜 음악’만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 활동이 음원 위주보다 공연 위주로 변화되고 있기에 더욱더 실력 있는 '진짜' 아티스트만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을 조합해보면 한 단어로 압축이 됩니다. 바로 ‘아날로그’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프로듀서로서의 3가지 조건은 ‘악기’, ‘경험’, 그리고 트렌드를 읽는 ‘감각’입니다. 악기는 물론 기타와 건반 등 아날로그적인 악기를 말씀드린 거고요, 경험과 감각 역시 사람의 몸과 마음과 정신에서 익힐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가 바탕이 되어야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 본인이 아무런 경험과 감각 없이 매뉴얼만 뒤적거리며 기기 조작 방법을 익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에 불과합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매뉴얼도 없으며, 간단한 조작만으로 절대 얻어낼 수 없습니다. 제 주변에도 최고의 기기와 장비로 무장한 프로듀서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음악을 들어보면 ‘퀀타이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딱딱 들어맞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속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그들의 음악에는 그 어떤 감성도, 감각도, 경험도 묻어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은 현시대의 흐름은 잘 파악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CNC 머신을 돌려 똑같은 모양의 ‘너트’를 생산해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중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고 그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 프로듀서가 할 일입니다.
‘디지털’은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표현해주는 진화된 플랫폼입니다. 그 플랫폼을 통해 전해져야 할 음악에 담아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 곳곳에 퍼져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천년송(松)을 지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나무의 나뭇가지가 빠르고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이 ‘디지털’이라면, 거대한 소나무 전체를 지탱하며 땅 속 깊숙이 뻗어있는 탄탄한 뿌리가 바로 ‘아날로그’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충분히 전한 것 같습니다. 제가 두서없이 나열한 이 글이 부디 미래의 훌륭한 음악가를 꿈꾸는 예비 음악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만을 바랍니다. 혹시 다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전문 프로듀서가 작업하는 노하우 등을 소개해 드리소 싶네요.
사운드캣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한 해 보내길 바랍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곧 새로운 음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