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_바닷속과 바다 위 @ 부산
바닷속, 그리고 바다 위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바닷속이 궁금한 걸까. 꼭 가야 한다는 말에 부산에서도 다시 여행길이다. 택시로 단번에 갈 수도 있지만, 지하철을 선택한다. 중앙역에서 해운대까지는 지하철 1-2호선을 갈아타고, 한 시간 거리였다. 작은 사람을 향한 배려 덕에 둘이 손을 잡고 앉아, 서울과 같은 점과 차이점을 찾고, 낯선 역 이름을 읽어본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거리에 아쿠아리움이 있다.
아이는 옛날에(그러니까 어린이집 시절이니 4년 전?) 다른 아쿠아리움도 가봤다며 물고기와 해파리를 소개해준다. 나도 가봤다며 마이크를 뺐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한다. “이건 뭐야?” 물으니 옆에 쓰여있는 내용을 확인해 가며 설명해 준다. 뿌듯한 표정도, 내용도 혼자 보고 듣기 아까운 순간이다.
한 바퀴 둘러본 후, 수족관의 끝 투명한 터널 아래에 다다랐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꼬마 손님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자기보다 더 작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흐르듯 스미나보다. 아이가 살포시 길을 내어준다. 예쁜 장면이 눈에 담긴다.
바로 뒤에 거북이가 헤엄을 치고 있다. “이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다친 친구들을 구조해서 데려왔을 거라고 믿는 아이에게, 잡혀서 온 친구들도 많다는 이야기까지는 할 수 없었다. 갇혀 있어 우리가 볼 수 있다면, 못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해본다. 동물원이나 직접 만질 수 있는 체험 장소에 자주 데리고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고 있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못하는, 봐야만 믿는, 인간의 호기심이 만든 곳.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한쪽 앞다리가 잘린 바다 거북이를 향해 “미안해 거북아”하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뻗어 쓰다듬는다. 괜히 눈물이 차오른다.
바닷속을 둘러보고 해변으로 나오니 바다가 고요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는 파도와 모래, 그리고 보이지 않은 그 아래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쉰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삶터에서 살기 위해 애쓴다. 아이도 나도, 바닷속 생명들도.
고요한 시간
점심을 먹고 들른 곳은 해운대 해수욕장 끄트머리, 미포에 위치한 카페였다. 유명한 호*이젤라떡을 먹고 찬 기운이 돌았는지 아이는 지쳐있다. 종이에 몇 글자 끄적이는데 아이도 어느새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집중하여 기울인 납작한 뒷머리가 나를 닮았다. 엄마 아빠가 무언가 집중하는 순간에(심지어 늦잠을 자도) 방문을 닫아주고, 이야기 중에 할 말이 생각나면 질문해도 되는지 묻는 아이, 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만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중인 것 같다.
저물어가는 해가 비치고, 사각사각 색연필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시간이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쉼을 공유할 수 있을 때의 충만함. 아이와 고래를 그리며, 수족관에서 만났던 앞다리를 잃은 거북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고, 자연을 더 지키자고 말이다. 눈은 종이를 향해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통하고 있다.
사진 속 너와 나_우리 예쁘다
6시, 유가 가고 싶어 하던 해운대 빛축제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돌아다니며 연신 예쁜 포즈를 짓는다. ‘엄마’라는 존재도 피사체가 되고픈 마음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예쁜 장소에 가면 ‘엄마도 찍어줄까?’ 묻는 건 얼마나 기다리면 돌아오는 걸까. 남기고 싶은 풍경을 두고, 내 편이 그리운 순간이다. (해변 포차와 횟집을 뒤로할 때 그리움이 극에 달했다.. 면 내편은 서운할까..)
서운한 마음을 남기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 말하고 만다. “유, 엄마도 이쁜 데서 사진 찍고 싶어. 엄마 사진도 남겨줄래?” 의외로 아이는 순순히 사진을 찍어준다. “한 장만 찍는다~” 해놓고 여러 각도로 엄마를 담느라 열심이다. 역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소중할수록 더 솔직한 소통이 필요하다. 사진 속 우리는 각자지만,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짝반짝 부산_1초가 1분만큼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어
”부산은 반짝반짝을 넘어서 번쩍번쩍으로 기억될 것 같아.“ 해운대야시장에서 요기를 하고, 숙소 가는 길에 아이가 말한다. 빛축제 중이라서인지 정말 반짝반짝했다. 그래도 내 눈에 가장 반짝이는 건 유다.
빛축제를 보려고 다른 일정을 고사하고 남은 유는 부산에서 마지막 밤인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엄마, 1초가 1분이 되면 안 되나, 시간이 느리게 가면 좋겠어.“ 라며 꼭 다시 오자고 한다. 또 오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지칠 때에 위안이 된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오늘도 나는 유의 뒷모습을 더 많이 봤다. 나흘째되니 제법 익숙해진다. 생각해 보니 위험한 건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맞닥뜨릴 상황인데 아이가 자유로이 다닐 기회를 너무 제한했던 것 같다.
2023.1.12. @ 부산_해운대 빛축제